top of page
두부.png
합작.png

운명을 믿습니까

                               ‘夏油 傑’

 

 

   어릴 때는 몸이 약했다. 놀이터에서 다른 친구들과 잘 놀고 있는 것 같다가도 잠시 한눈만 팔면 꼭 어딘가 다친 채로 엉엉 거리며 울고 있어 엄마는 성한 곳이 없는 어리고 작은 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런 자질구레한 상처들뿐만 아니라 이상하게 더위에 약한 건지 뱀파이어도 아니고 강한 햇빛과 눈이 마주치면 픽픽 쓰러졌다. 초등학생이 되고 운동장에서 열심히 놀다 쓰러졌던 날, 나는 이마가 찢어져 다섯 바늘이나 꿰매야 했다. 난 웃기게도 누구보다 잘 다치면서 아픈 건 지지리도 참지 못했다. 주저앉아 으앙 하고 우는 나를 일으키며 무릎을 털어주던 엄마는 그날 집에 와서 결심했다는 듯이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여보세요? 예약 언제쯤 가능한가요? 3년뒤요? 일단 예약해 주세요. 네네.’ 전화를 끊은 엄마는 상처투성이인 내 다리를 어루만지며 얼마나 대단하길래 예약이 3년이나 걸리냐며 구시렁거렸다.

 

   초등학생이었던 나에게는 햇볕이 쨍쨍한 바깥에 나가 친구들과 뛰어놀다가 쓰러질 것 같으면 집에 들어와 아이스크림 바 하나를 쪽쪽 빠는 것 가장 큰 행복이었다. 전화를 마친 엄마는 한숨을 한번 푹 쉬더니 3년만 더 고생하자며 나를 꼭 안아줬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생이 되고 난 이후로 종종 내 손을 잡고 음침한 장소로 데려가 기도를 시키거나 절을 시켰는데 또 동네 아줌마들에게 들은 정보로 이상한 돌팔이나 사이비에 전화를 해본 것이 틀림없었다.

 

   그 뒤로도 나는 많이 굴렀다. 굴렁쇠도 아니고 중학교에 입학 한 이후에도 계단에서 구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세 번이었다.) 옆에서 항상 넘어지는 나를 잡아주던 친구들은 이내 혀를 차며 다리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니? 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아쉽게도 다리에는 별문제가 없었다. 분명 힘을 꽉 주고, 정신 붙들어매고 공부할 때도 안 하던 집중까지 했는데도 눈을 감았다 뜨면 픽, 하고 넘어져 있기 마련이었다.

 

 

 

   중학교 3학년 겨울, 그날 엄마는 이른 아침부터 준비를 시작하더니 방학을 맞아 백수처럼 집에서 음식만 축내며 뒹굴거리는 나를 우리 지역 끝에 위치한 마을까지 데려갔다. 버스를 내렸을 때 주변을 휙휙 돌아봤지만 버스가 떠나간 자리에 휑하고 바람만 불어올 뿐 그 흔한 편의점이라든지, 브랜드 빵집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엄마는 핸드폰으로 이리저리 지도를 살펴보더니 이내 찾은 듯 깊은 골목으로 날 끌고 갔다. 추운 날씨에도 차오르는 숨에 헉헉거리며 뒤꽁무니를 쫓아가자 코너에 빨간색의 큰 팻말이 보였다. ‘예약 번호 010 – xxxx – xxxx’. 붉게 녹슨 건물 외벽과 군데군데 붙은 노란 부적들이 대충 봐도 평범해 보이는 집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지저분한 덩굴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대문, 작아 잘 보이지도 않는 창문의 위쪽 사이까지 붙어 있는 부적들과 안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 딸랑딸랑 종소리는 내 생각을 다시 한번 증명해 주는 듯했다.

 

   “잠깐만 엄마. 여기가 어디야?”

   “어디긴 어디야. 점집이지. 얼른 들어가자.”

 

   어? 아 나 안 들어가!!! 이런 거 안 믿는다고!!!

 

   무슨 유치원 가기 싫다고 때 쓰는 어린아이처럼 엄마의 팔을 잡고 이리저리 흔들었다. 그런 나를 무시하고 음산한 기운을 내뿜는 점집 안으로 당당히 걸어 들어간 엄마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뒤를 따라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어두침침한 내부에 인상을 찌푸리며 걷다 미처 보지 못한 바닥에 널린 물체에 발이 걸려 넘어질 뻔했다. 조심스럽게 끼익 소리를 내며 방문을 열면 두피를 영혼까지 끌어모아 묶은 사나운 인상의 무당이 보였다.

 

   “많이 아프겠네.”

 

   자리에 다 앉기도 전에 나를 노려보며 새빨간 입술을 연 무당이었다. 엄마는 놀랐지만 그러지 않은 척 네? 하며 반문했다.

 

   “지금까지 많이 다쳤지? 앞으로는 더 크게 다칠 거야.”

 

   괜히 나를 저주하는 듯한 말에 기분이 나빠졌다. 덤벙대 잘 다친다는 건 누구나 때려 맞출 수 있는 거 아닌가? 내 상처들을 보고 이야기한 건 아닌가 의심을 가득 담은 눈으로 내 다리를 쳐다보면 어라라. 긴 바지를 입고 왔었네.

 

   “그, 그럼 어떡해야 하나요. 여기 얘 다리 좀 보세요. 이게 여자애 다리가 맞는지..”

 

   엄마가 내 바지 밑단을 걷어올리며 이야기했다. 나는 무력 없이 들어올려진 내 다리와 그런 다리를 눈으로 훑는 무당의 눈치를 번갈아 살피며 엄마의 손을 슬그머니 잡았다.

 

   “방법이 있어.”

 

   무당은 고개를 휙 돌리며 이야기했다. 무엇을 찾는 듯 좁은 방안을 둘러보던 무당은 이내 못 찾았는지 탁자 아래에서 부적을 하나 꺼내들었다.

 

   “방법이 뭔가요..? 그거면 이제 우리 애 안 다치는 거죠?”

 

   엄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내 다리를 냉패겨치고 무당에게 물었다. 무당은 아무 말 없이 부적을 빨간 글씨로 써 내려가더니 앞으로 내밀었다.

 

   “운명의 상대를 만나야 해.”

   “네?”

 

   뜬금없는 운명의 상대 타령에 내가 대답했다. 역시 점 같은 건 믿을게 못 돼. 대충 대답한 뒤 엄마를 데리고 나가고 싶었지만 엄마는 사막의 오아시스라도 찾은 듯 무당에게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운명의 상대가 여름이자 겨울이네. 아직 못 만났고.”

   “죄송한데 저한테 운명의 상대가 있다고요?”

   “여름이자 겨울인데..”

   “저기..”

   “못 만날 수도 있겠는데?”

   “저기요.”

 

   나와봐!

   엄마가 인상을 찌푸린 나를 밀고 몸을 들이밀었다.

 

   “그래, 그. 운명의 상대. 얘 운명의 상대는 어떻게 만나나요. 얘가 이래봐도 남자친구도 한 번도 없었어요. 그게 다 운명의 상대 때문인 건가요? 못 만날 수도 있다는 건 무슨 소리예요?”

   “어떻게 만나긴. 운명의 상대니까 알아서 마주치겠지. 내가 딸 애를 보아하니 웬만한 남자애들은 눈에 안 차는 거 같은데.. 그 이상은 얘가 알아서 잘 해야지. 지금 이 상태면 못 만날 수도 있다는거야.”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네?”

   “몰라 몰라. 이제 나가봐.”

 

   무당은 절절하게 구는 엄마에게 잡혔던 손을 빼내어 휘휘 저으며 이야기했다. 내가 보기엔 순 엉터리인 것 같았다. 지금 시대의 운명의 상대가 뭐람. 붉은 실 그런 것도 아니고. 여름이자 겨울이라는 소리는 또 뭔데? 못 만날 수도 있다는 말까지 들었을 때는 그냥 나를 저주하려 하는 것 같았다.

 

   “엄마 그냥 나가자.. 내가 열심히 운명의 성대, 아니 운명의 상대 찾아볼게. 응?”

 

   엄마는 내가 옷깃을 잡아끌며 운명의 성대인지 상대인지를 찾아보겠다 약속을 하고 나서야 그 음습한 집을 빠져나왔다. 더 날카로워진 바람에 손에 호빵을 하나씩 잡고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엄마는 내 귀에다 대고 무당에게 같이 들었던 운명의, 아 말하기도 싫다. 그 어쩌고를 늘어놓았다. 언제 만날지 모르니 항상 깨끗하게 하고 다니고 성격도 좀 죽여라 뭐 이런 이야기들이었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거리며 김이 폴폴 새어 나오는 호빵을 깨물어 먹었다.

 

 

 

 

 

 

 

 

 

   겨울이 지나고 어느새 새 학교의 교복을 맞춘 나는 마지막 학창 시절을 보낼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겉옷이 얇아지고 소매가 없는 윗옷을 입었다가 또다시 솜이 빵빵한 패딩을 껴입을 때까지 무당이 말했던 운명의 상대와는 만나지 못했다. 어른에 가까워진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복도에서 뛰다 넘어지는 건 일수였고 엄마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내 다리를 포기한 것 같았다. (약도 잘 발라주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변한다. 어른들이 보기엔 얼마 되지 않은 인생이겠지만 그만큼 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다. 한곳에만 머물러있는 사람은 없고 그건 나도 예외는 아니다. 중학생때 까지만 해도 열명이 넘는 아이들과 무리를 지어 몰려다녔던 것 같은데 고등학생이 되고 나니 다들 각자의 반 친구들이랑 논다. 나도 진로 문제와 여러 가지로 바쁜 탓에 다른 학교로 헤어진 친구들과는 거의 연락을 할 수 없었다. 친하지 않은 친구들 앞에서는 의외로 내성적인 성격이라 학기 초, 모르는 아이들이 대부분인 반에서 혼자 겉돌았고 나는 결국 벌써 10년째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는 (다른 반이라 다행이다.) 오래된 소꿉친구 하나 옆에 달라 붙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지겹다, 지겨워.”

   “여기 뭐 묻었다.”

 

   짝꿍을 밀어내고 내 옆자리를 차지한 녀석의 옆모습을 보며 지겹다고 중얼거리면 듣기 싫은지 손가락으로 내 얼굴을 매만지며 화제를 돌린다. 묻긴 뭐가 묻어. 손가락이 가리킨 곳을 문지르면 아무것도 묻어 나오지 않는다. 여우 같은 자식. 흥하고 고개를 돌려버리면 낮게 웃으며 일어나는 것이 보인다.

 

   “갈게.”

   “뭐야. 5분도 안 있었는데?”

   “얼굴만 잠깐 보러 온 거야. 요즘에 바빴잖아.”

   “으, 느끼해.”

   “진짜 간다.”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는 반강제로 자리를 뺏은 건 언제고 깨끗하게 정돈을 한 뒤 반을 나간다. 반을 나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자리에 앉아있던 반장, 뒷문 앞에서 수다를 떨던 여자아이들 할 거 없이 모든 여자애들의 시선을 받으며 퇴장한다. 아는지 모르는지 친구랑 팔짱을 낀 채로 수줍게 인사하는 여자애에게 응, 안녕.이라며 대답까지 해준다. 말 걸기에 성공한 여자아이는 친구들과 수군거리며 얼굴을 붉히기 바쁘다. 그는 그대로 반을 나간 뒤 아이들의 관심이 사그라들었을 때쯤 휙 돌아 나를 보며 입을 열심히 움직인다.

 

   ‘이따 집 같이 가.’

 

   대충 알아듣겠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 만족한 듯 발걸음을 옮긴다. 친구가 사라진 반에서 책상에 엎드리면 슬금슬금 내 주위로 인파가 모이는 느낌이 든다.

 

   “여주야.. 너 쟤랑 소꿉친구라 그랬지?”

   “어? 응.”

   “우와..”

 

   뭐가 우와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친절한 말투로 내 손을 붕붕 흔들어대는 탓에 정신이 살짝 혼미해졌다. 난 그가 우리 반에 찾아오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걔가 한번 왔다 가면 갑작스레 나에게 말을 거는 여자애들이 부담스러운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혹시 이것 좀 전달해줄 수 있어..?”

 

   지나가는 길에 이런 부탁을 받을 때도 있었다. 하도 붙어 다니는 탓에 학교의 유명인사인 그와 내가 소꿉친구라는 사실은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파만파 퍼지게 되었고 꼼짝없이 여러 사람의 시선을 그와 함께 받아야 했다. 한껏 꾸며진 러브레터를 내 손에 쥐여주며 거절도 못하게 만드는 건 그를 좋아하는 여자애들의 특징이었고 그럴 때면 난 어쩔 수 없이 불평 않고 그에게 가져다주어야 했다. 귀찮은 건 딱 질색이지만 딱 잘라 거절하지 못하는 은근히 소심한 탓에 귀찮음과 더불어 친구보다 먼저 친구의 연애 사정을 알아버리는 건 여간 스트레스 덩어리가 아니었다.

 

   그날 또한 여느 때와 다름없이 혼자 맡게 된 분리수거를 하러 소각장으로 내려갔을 때였다. 무거운 쓰레기 상자를 차곡차곡 모아 들고 건물 뒤편으로 가면 분리수거하는 날이라 그런지 트럭 위로 산처럼 쌓인 종이들이 보인다. 아직 추운 바람이 부는 날씨에 위에서 이미 분리해온 쓰레기들을 얼른 버리고 올라갈 생각이었다.

 

   “저기..”

   “응?”

   “이것 좀 전해줄 수 있어?”

 

   하루에 벌써 몇 번째 인지. 학교에서 그에게 편지를 전하지 않은 여학생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울 것이라고 나는 확신했다. 계속 받아 고분고분 전해주다 보니 모두 나를 찾는 것 같아 이참에 확실히 거절 의사를 밝혀야겠다고 생각했다.

 

   “직접 가서 전해주는 게 어때? 한두 명 부탁하는게 아니라.. 나도 좀 힘드네.”

   “어? 아니 이거 학생증.”

   “엉..?”
   “복도에서 주웠는데.. 너 걔랑 친하지 않아? 너도 다른 애들 편지 가져다주려면 피곤하긴 하겠다. 그냥 내가 직접 가져다주는 게 낫겠지?”

   “어? 아니야 아니야. 학생증이면 전해줄 수 있어!”

   “그럼 부탁할게.”

 

   내 손에 학생증을 쥐여준 애는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져 있었다. 항상 나보단 그가 꼼꼼한 성격이라 답지 않게 물건을 흘린 것이 나에게는 기회였다. 이제 앞으로 나한테 덤벙대지 말라고 잔소리하기만 해봐. 남들이 보면 음흉하다고 생각할만한 표정을 얼른 지우고는 다시 교실로 발걸음을 돌렸다. 쓰레기가 사라져 학생증을 제외하고 텅 비어버린 손에 계단을 오르며 학생증을 이리저리 뒤집었다.

 

   “아-. 1학년 때 사진.”

 

   학생증에 붙어있는 사진에는 갓 고등학생이 된 앳되어 보이는 그의 얼굴이 담겨있었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그의 다소 무서운 인상에 웃음이 나왔다. 붙어있는 그의 사진 옆에는 진한 글씨로 그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夏油 傑’

 

   맞아, 이름에 여름 하(夏) 가 들어갔지. 어렸을 적 햇빛이 쨍한 여름만 되면 힘이 없는 내 탓에 자기는 여름이 밉다고 중얼거린 것이 떠올랐다.

 

   ‘0203, xx 년도 입학.’

 

   그 밑은 그의 생일과 입학년도였다.

 

   “나랑 같이 입학했고.. 생일은 2월 3일.”

 

   글자를 중얼거린다.

 

   어?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다. 생일이 2월. 지금은 개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3월이고. 그의 생일은 2월. 이름은 여름이면서.

 

   2년 전 찾아갔던 무당의 말이 떠오른다.

 

   ‘운명의 상대가..’

 

   운명은 믿지 않는다. 하느님이고 하나님이고 종교도 없다. 지옥이니 천국이니 관심도 없고 그냥 죽으면 모든 게 끝났으면 좋겠다. 귀신이고 도깨비고 허구의 이야기일 뿐이다.

 

   ‘여름이자 겨울이네.’

 

   올라가던 몸을 비튼다. 운동장이며 화장실, 매점할 거 없이 그 애가 있을 법한 곳을 찾아다녔지만 평소에는 잘만 보이던 사람이 어디로 솟아버린 건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못 만날 수도 있겠는데?’

 

   학생증을 쥔 손에 힘을 꽉 준다. 다시 올라간 계단. 그의 반 뒷문 앞에 선다. 숨을 내쉬다 시간을 한번 본 뒤 손에 힘을 주면 쾅 하고 문이 열린다.

 

   “여기서 뭐해?”

 

   나를 보는 그의 눈이 반짝거리는 것 같다. 무서웠던 인상이 금세 사르르 풀리더니 입꼬리가 올라간다. 무방비한 얼굴. 이제야 왜 사람들이 홀리는지 알 것 같다.

 

   “너네 반 가려고 했는데. 오늘은 너가 먼저 와줬네.”

 

   이건 여우 같은 자식이 아니라 여우잖아.

   그 애의 옷소매를 붙잡고 헉헉거리면 그는 친절하게도 허리를 감싸 안고 일으켜준다. 그와 눈이 마주치면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한다. 발뒤꿈치를 들고 얼굴을 가까이한다. 당황한 그 애의 얼굴이 보이고 이내 입술이 포개진다. 복도를 지나다니는 아이들의 시선과 웅성거림이 한층 커진다. 그는 당황했던 게 맞는지 어느새 얼굴을 아래로 붙여온다. 몸이 밀려 뒷걸음질을 치면 허리를 감싼 손에 힘을 준다. 조금의 틈도 허락하지 않는다는 듯이 맞닿은 얼굴 사이로 오후의 햇빛이 내리 찐다. 찡그린 눈 사이로 나를 쳐다보던 그 애가 보인다.

 

 

 

   이름은 여름, 생일은 겨울. 그는 여름이자 겨울.

   운명이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