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술사가 되고 싶었던 적은 없다. 고전에 입학한 4년 내내, 여름이 될수록, 일이 많아질수록 더 자주 그런 생각을 했다. 그냥 태어날 적부터 알 수 없는 괴물이 보였고 조막만한 애가 아무것도 모른 채 위험에서 제 몸을 지켰을 뿐이었는데, 그걸로 일생이 바뀌어 버릴 줄 누가 알았겠어. 평생의 반 정도 되는 세월을 3대 가문 중 하나인 카모 가에서 자랐으면서 어떻게 이런 겁쟁이가 될 수 있었는지는 미츠루 자신 또한 궁금했다. 그러니까 그런 미츠루가 생각하기로 카모 노리토시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 애가 멸시받고 자라는 걸 두 눈에 똑똑히 담았다. 눈앞에서 어머니가 끔찍한 대접을 받고 그러다 결국 쫓겨나는 걸 두 눈으로 본 어린 아이의 심정을 감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미츠루.”
“… 응?”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두 번이나 불렀는데.”
“아, 아냐. 머리… 괜찮은가 싶어서.”
노리토시는 뜬금없는 소리를 한다는 양 고개를 기울였다. 하늘은 구멍이 뚫리기라도 한 양 끊임없이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교실이 있는 건물에서 숙소까지는 오 분도 채 걸리지 않았지만, 오 분은커녕 일 분만 서있어도 비에 젖은 생쥐 꼴이 될 것이 뻔했다.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벌써 이십여 분은 지난 것만 같았는데 그칠 생각은커녕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부터 장마라고 했나. 토시미츠 미츠루와 카모 노리토시는 주술의 특성 상 비가 오는 야외에서는 큰 전력이 되지 않았다. 두 사람이 딱히 비 오는 날 바깥을 돌아다닐 만한 위인도 아니었으니 그야말로 비 내리는 날과는 상극이었다.
“괜찮아, 움직이는 데 지장도 없고.”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그러니까 미츠루는 유독 노리토시와 단 둘이 있을 때 그런 상념에 빠지곤 했다. 십 년 전 즈음 초여름 저녁에 마주친 3급 주령이라던가, 그로부터 몇 달 즈음이 지나 늦여름의 장마가 쏟아지는 날 만난 카모 도련님이라던가. 노리토시는 지금이야 어디 가서 부족하지는 않을 정도로 커다란 덩치지만 어린 애들에게 한 살의 차이가 얼마나 크던가. 십 년 전만 해도 저보다도 자그마한 꼬마 아이였고, 그런 주제에 가문 사람들의 치졸한 괴롭힘에 질 수 없다는 양 악착같이 버텨내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런데 이제는 머리에 붕대를 두르고 야구 배트를 쥔다니 새삼 믿기지 않았다. 미츠루는 힐긋 시선만 돌려 카모 노리토시를 바라보았다.
옛날에는 비 오는 날이면 내가 널 데리러 갔었는데.
미츠루는 그런 말을 꺼내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카모 가의 궁궐같은 커다란 전통 가옥을 처음 보았을 때는 집 안에서 길을 잃는다는 게 정말 가능한 일이구나 싶었다. 긴 복도와 수많은 방. 실제로 처음 일 년은 꽤 자주 길을 헷갈리곤 했다. 마당도 몇 개씩이나 있어서는 야외를 거치지 않고 이동할 수 있는 길이 적을 지경이었는데, 노리토시는 집안사람들에게 어머니가 화를 입던 날이면 늘 별채 한 편의 처마 아래 앉아 있곤 했다. 여길 아는 건 도련님과 저 뿐이에요. 미츠루는 그런 말을 건넸었고 그러다 소나기가 억세게 내리면 노리토시는 본관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쫄딱 젖은 모습으로 있다가는 집안 사람들이 그냥 넘어갈 리 없었으니까. 그럴 때면 미츠루는 꼭 커다란 우산 하나를 들고 버선발로 뛰어나가기 일쑤였다.
그런 말들을, 그리고 옛 추억은 미츠루는 마냥 삼켰다. 같은 고전의 학생이 되며 말을 놓았고 노리토시는 남들이 보는 앞에서 그녀를 선배라 호칭했으나 그런다고 정말 뭐라도 되는 양 구는 건 곤란한 일이었다. 몇 년 만 지나면 노리토시는 카모 가의 당주가 될 테다. 처음부터 바란 것은 아니었을 테지만 그는 지금도 완벽한 차기 당주였고, 손에 쥔 것을 놓을 만한 위인이 아니었으니까. 반면 미츠루는 카모 가에 발을 딛던 그 날부터 아주 긴 카운트다운을 세는 마냥 굴었다. 고전에 입학하기까지 십 년, 고전을 졸업할 때까지는 또 사 년. 요즘 들어 고민하는 것은 카모 가의 은혜를 갚기 위해 주술사로 일할 세월은 어느 정도가 좋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 마지막 카운트다운이 지나면 노리토시와는 다른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억세게 쏟아지는 빗소리는 여전했다. 그러니 미츠루는 입을 여는 대신 걱정스레 하늘을 바라보았다. 기다리다 못한 미츠루가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그칠 생각을 않네. 숙소에 닛타가 있을 텐데, 전화를….”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뜻밖의 대답에 미츠루는 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카모 노리토시를 바라보았다. 어리둥절하게 바라보는 모습에 노리토시가 태연하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옛날 생각이 나서.”
“…… 응?”
그러니까 그야말로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미츠루가 무심코 되물었는데 노리토시는 딱히 대답해 줄 의사가 없어 보였다. 아, 그래. 그러자. 미츠루가 몇 초의 정적 끝에 어색하게 대답했다. 그 말에 담긴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같은 생각을 했나. 아니면 저 모르는 비 오는 날의 추억이 있었나. 그런 생각을 하며 도로 하늘로 시선을 돌리면 하늘은 여전히 새카만 먹구름에 잠식되어 있었다. 다행인 점은 그나마 저 멀리서부터 햇살이 들고 있었다는 것 정도. 내내 지켜오던 침묵이 어쩐지 어색했다. 미츠루는 잠자코 손을 꼼지락거렸다. 정말로 옛날 생각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