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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인식하게 된 건 어느 여름의 초입.

 

 

“⋯⋯봤어?”

“뭘?”

“아니⋯. 못 봤으면 됐,”

“네가 요시다의 신발장에 이상한 부적을 붙인 걸 말하는 거야?”

 

 

이상한 부적이라니⋯. 당시의 너는 놀리려는 의도를 담아 그런 말을 했을 터였지만, 난 졸업이 그리 오래 남지 않은 시점에서 볼썽사나운 소문이라도 돌까 초조해하기 바빴다. 처음부터 너도 ‘보이는 쪽’이라 말했으면 좋았을 것을. 너는 그런 짓궂은 면을 종종 보이곤 했다. 항상 버릇인 마냥 입에 걸친 친절한 미소에 어울리지 않게.

 

 

“이건, 그러니까⋯.”

“응.”

“이상한 게 절대! 절대 아니야.”

“알아. 없애려고 했던 거지?”

“⋯⋯어?”

 

 

당황해서 눈만 끔벅이던 나에 비해 넌 그 상황이 퍽 즐거운 듯 손수 신발장 문을 닫아주는 배려를 선보이기까지 했다. “마무리까지 잘해야지.” 내 주력이 담긴 부적은 이미 저주를 퇴치하고 소멸한 뒤라 완전범죄가 되는 순간이었다.

 

 

“고마워. 그⋯”

“게토 스구루.”

“⋯그래. 게토 군. 내가 반 애들 말고는 이름을 못 외워서⋯.”

“우리 같은 반이야.”

“⋯⋯⋯아.”

 

 

어쩔 줄 몰라 할 말을 고르는 게 웃겼는지 결국 넌 소리 내어 웃었다. 덕분에 경직됐던 몸이 풀렸지만⋯. 사실 이름을 모르고 있던 건 아니다. 그야 또래보다 큰 덩치를 가진 데다 멀끔한 외모와 바른 사회성을 보유한 동급생은 조그마한 중학교에서 꽤 유명인이었으니까. 당황해서 헛소리가 나온 나를 네가 적당히 모르는 척해주었다는 걸 그 당시엔 눈치채지 못했다.

 

그날 우리는 하굣길에 적잖은 대화를 나눴다. 여름이면 번식하듯 늘어나는 저주의 숫자가 유독 학교에선 보이지 않았던 이유가 네 덕분이었다는 것, 그리고 네가 ‘보이는 쪽’의 사람을 만난 게 나로서 이번이 처음이라는 것. 같은 학교에서 졸업 학년이 될 때까지 마주치지 않았던 게 용할 지경이었다.

 

하도 여유롭게 굴길래 그런 친구가 흔한 줄 알았더니만⋯. 그냥 넌 제 감정을 숨기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하기야, 매번 주령구를 몸속으로 받아들이며 느끼는 감정들을 그대로 표출하고 다녔더라면 바른 인성의 소유자라는 타이틀은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 과정이 사람을 돕는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친절하지만 묘한 동급생. 그게 너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었다.

 

다음날 신기하게 몸이 가벼워진 것 같다는 요시다의 말을 흘려들으며 우리는 마주 보고선 남몰래 웃었다. 나름 동급생이라는 이유로 베푼 친절이 새로운 인연을 새겨주었기에 요시다에겐 고마운 일이었다.

 

그날을 기점으로 우린 거리에 점차 늘어나는 녹음처럼 서로에게 서서히 스며들었다. 부 활동을 그리 중요시하지 않는 중학교의 방과후는 우리에게 기꺼운 시간을 만들어 주었고, 같은 영역의 사람을 만났다는 건 생각보다 무척 반가운 일이어서. 너도 삐져나오고야 마는 즐거움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비 온다.”

“그러게. 소나긴가?”

“오늘 퇴치는 글렀네⋯. 사실 부적 써두는 거 깜빡하긴 했지만.”

“⋯⋯우산은 있어?”

“왜, 씌워주게?”

“응. 씌워주게.”

 

 

그 여름날 우중충한 하늘이 퍼붓는 빗물조차 그리 나쁘지 않았다고 하면 네가 부담스러워할까? 그럴수록 저주가 들끓는단 걸 아는데.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걸 지겹도록 접하는 게 익숙해진 나이였음에도, 더 나은 상황에 놓이게 되니 자연스레 과거를 망각하게 되는 것이다. 빗속에서 맞잡은 손은 너에 대한 인상처럼 따스했다.

 

 

“⋯스구루?”

“⋯⋯⋯.”

“의외⋯는 아닌데, 새롭긴 하네.”

“그⋯⋯미안.”

 

 

불을 끌 타이밍을 놓치고 굳은 채로 날 바라보기만 하던 너에게 차마 어울린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흡연자인 걸 숨기다 우연히 들킨 게 그리 충격이었나. 딱히 불편하진 않아서 끄지 않아도 된다 하니, 마지못해 입에 갖다 대는 모양새가 살짝 웃기긴 했다. 늦여름, 시간에 쫓긴 매미가 필사를 다 해 울어 젖히던 그날은 익숙지 않은 담배 연기와 함께였다.

 

그 뒤로 넌 피는 모습을 구태여 숨기지 않았다. 언제부터 폈냐 물으면 딱히 기억나진 않는다는 게 영락없는 양아치의 모양새와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네가 친절하다고 느낀 것은, 사람의 인기척에 다가온 고양이를 보고선 미련 없이 불을 꺼, 냄새가 배지 않은 손으로 쓰다듬을 줄 아는 사람이어서다.

 

 

“⋯왜 그렇게 쳐다봐?”

“그냥. 너 앞머리에 불이라도 붙을까 해서.”

“그럴 리가 없잖아⋯.”

 

그래도. ⋯자, 이제 됐다.

 

 

당치도 않는 변명을 덧붙이며 넘겨준 앞머리 속 드러난 이마는 의외로 고왔다. ⋯왜 굳이 빼놓는 거지? 방학 사이 불어난 네 키는 이미 성장이 멈춘 나에게 닿지 않았지만, 친절한 동급생이던 넌 매번 허리를 숙여주는 수고를 해줬다. 그게 귀여워서 긴 흑색의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고는 손길을 옮겨 이마를 쓰다듬어 주는 게 습관이 될 정도다. 그럴 때마다 넌 미묘한 표정을 지었고, 기껏 넘겨준 머리를 자꾸 일부러 빼놓는단 걸 알았기 때문에 네가 할 말은 없었다.

 

너를 만나고서야 그 진가를 알게 된 여름은 푹 찌는 계절을 싫어했던 나에게 마치 길고 긴 한여름 밤의 꿈과 같았다. 자칫 깨 버릴까 조심스러웠던, 그러면서도 그대로 머물러있는 널 보며 안심하길 반복하는⋯. 비술사 출신인 주술사는 세계의 무지에서 비롯된 결핍이 있기 마련이라, 우린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는 사이가 되었다. 그 필요에 의한 관계가 은근히 마음에 들었다.

 

그다음 해의 여름은 그리 순탄하진 않았다. 중학생이던 시절처럼 내키는 대로 제령하는 게 아닌 주술사의 신분으로써의 의무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입학한 뒤로 속이 트여 보이는 너를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놓였다. ‘그것’이라고만 칭해왔던 것이 저주였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이 특별하기보단 괴상(怪狀)에 가까운 존재로서의 인식이 완전히 뒤바뀌었기 때문이겠지.

 

같은 영역의 친구가 하나 생기는 것으로 채워지지 않았던 결핍이 완전히 채워지는 순간이었다. 나란히 스카우트되어 입학한 고전의 생활은 적응하기 바빠 고역에 가까웠지만, 익숙한 존재가 곁에 있었기에 안정감을 주기 충분했다. 그렇게 우린 주술사가 되었다.

 

 

“유성우?”

“응. 오늘 새벽에 떨어진대. 혹시⋯,”

“유성우 같은 소리 하네.”

 

 

‘보러 갈래?’ 같이 우스운 뒷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넌 주술사란 애가 그런 것도 믿냐?”

“⋯⋯사토루.”

 

 

네 세계가 넓어진 점에 대해선 아주 기뻐할 일이었어도 그건 네 영역에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들어가게 되었다는 말과 같았다. ⋯짜증 나는 고죠 사토루. 걘 자신의 첫 친구가 실력도 되지 않는 그저 그런 애와 붙어먹는 게 못내 불만인 듯했다. 저런 애한테 네가 물들까 처음엔 불안했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애와 네가 꽤 잘 맞는단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솔직히 서운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야. 그럼에도 너에게 불만을 품지 않았던 것은, 그날 새벽 기숙사 앞을 찾아와 말없이 손을 내밀던 네 다정함을 알고 있어서다. 그리고 그건 나만의 것이란 걸 알았다.

 

 

“스구루는 안 힘들어?”

“왜?”

“이제 완전 여름이잖아.”

“글쎄, 아직은. 넌 안 힘들어?”

“난 너네보단 임무 적게 받으니까. 애초에 여름이 싫지 않기도 하고⋯.”

“⋯왜?”

“음, 그냥⋯ 왠지 살아있는 느낌이 나잖아. 푸르고 빛나는 계절이니까. 물론 주령은 싫지만.”

“그럼 이번 여름은 오래가게 해달라고 빌어야겠네.”

 

 

그날은 비 대신 별이 내렸지만 맞잡은 두 손 사이의 빈틈은 없었다.

 

너는 계절이 돌고 돌아 바뀌어도 ‘친절한 동급생’이란 타이틀을 저버리지 않았다. 이리 말할 때마다 너는 부정하려 애썼지만 글쎄, 나는 네가 ‘고죠만으로 충분하지 않아?’라며 붙잡고 떼를 썼다면 난감해하면서도 결국 그 여름의 오키나와 해변엔 가지 않았을 것을 안다, 그저 ‘동급생’이라고 치부하기엔 다소 어폐가 있어도 그랬다.

 

 

“스구루, 괜찮아?”

“⋯⋯뭐가?”

“피곤해 보여.”

“내가 피곤할 게 뭐가 있겠어. 사토루가 바쁘면 바빴지. 이제 진짜 최강이 됐으니까.”

 

 

유독 시리 바빴던 여름의 너는 무언가에 내몰린 것처럼 보였다. 주령구를 삼킨듯한 표정을 항시 하고 있었으니까. 고죠 사토루가 말한 것처럼 살이 빠진 것 같다고 치부할만한 게 아니었단 말이다. 그럼에도 너는 이 주제로 대화하길 꺼렸다. 그래서 너를 만나고 처음으로 여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조금 여유가 생기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하면서.

 

 

“하이바라?”

“아, 선배! 안 그래도 게토 선배 보고 오는 길이에요.”

“⋯⋯나 스구루 만나러 간단 소린 안 했는데?”

“앗, 아닌가요? 당연히 그러실 줄 알고⋯.”

“맞긴 해.”

 

 

하지만 그건 정확히 오판이었단 걸 눈치챘어야 했다.

 

 

“근데, 두 분은 사귀시는 거 맞죠?”

“아니?”

“⋯어째서요?!”

“왜 그렇게 생각해?”

“그야⋯ 저번에 손잡은 것도 봤고⋯⋯. 진짜 안 사귀세요⋯?”

“글쎄?”

 

아 진짜⋯놀리지 마세요! ⋯어, 게토 선배다.

 

 

멀찍이서부터 걸어오는 넌 심기가 뒤틀린 것처럼 보였다. ⋯왜? 날 볼 때면 항상 보여주던 다정한 눈빛이 아닌, 신경질이 난 듯한 눈. 그 눈길의 종착지가 너에게 해주던 버릇 마냥 하이바라의 삐져나온 머리를 정리해주던 손을 향한 걸 눈치채곤 급히 손을 내렸다.

 

 

“⋯이리로 와.”

“게토 선배⋯?”

“이리 와줘. 응?”

“미안, 하이바라. 넌 가 보는 게 좋겠다.”

“⋯네에.”

 

 

하이바라가 떠나자 넌 곧장 몸을 포개어왔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건 전혀 신경쓰이지 않을 정도로 간절해 보여서, 그만 품을 내주고 말았다.

 

 

“방금은 좀 짓궂었어, 스구루. 너 존경한다는 애한테.”

“그냥⋯. 그러고 싶어서.”

“진짜 더위라도 먹은 거야?”

“⋯있지. 저주가 없는 여름이 된다면, 네가 더 좋아할까?”

“갑자기?”

“응. 갑자기.”

 

 

고전에 슈퍼가 있을 리 만무했으므로, 우린 고전을 벗어나 더위를 식힐 아이스크림을 사러 갔다. 그러던 중 만난 고양이를 보며 옛 생각이 났던 나머지 다가가려 했지만⋯, 우리를 마주한 고양이는 놀라선 하악질을 하곤 도망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를 보고 놀란 것이 아닐 수도 있고. 고양이는 기민한 감각을 지녔다고들 하니까. 결국 머쓱해진 나는 괜스레 웃으며 네게 대답했다.

 

 

“음⋯. 아무래도 주령이 없어진 세상이 궁금하긴 해.”

“역시 그렇지?”

 

 

네가 예전 그 여름에 계속 머물러 줄 거라 생각한 게 잘못이었을까? 제일 바쁘지 않았기에, 늘 상 지켜볼 수 있었으면서도 네가 했을 생각을 알아주지 못했다. 주술사답지 않은 안일함이었다.

 


“근데 그럼 우리 뭐 해 먹고 살아? 갑자기 실직자 되는 건데.”

“⋯⋯그게 걱정인거야?”

“너무 이기적인가? 하긴, 스구루는 그렇게 된다 해도 저주가 사라지는 쪽을 택할 거 같네. 넌 친절하니까.”

“내가 친절해?”

“응. 아니야?”

 

 

그때 너에게서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너와 처음 마주했던 여름은 따스했다. 어쩌면 그다음만이 아닌 모든 여름이.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여름은 없나 봐.

 

 

“⋯⋯스구루?”

“아, 이 근처에 임무가 있다고 했었나. 나 보러 온 거야? 역시, 친절한 건 내가 아니라 네 쪽일지도 몰라.”

“⋯⋯⋯.”

“있잖아, 내가 그린 여름을 너도 좋아해 줬으면 좋겠어. 늘 청명한 하늘을 보여줄 거라고 약속할게.”

“⋯무슨 소리야? 마을 사람들은, 아니, 이게 대체⋯⋯.”

 

 

이제 와서 그때 네게 그냥 여름이 아닌, 너와 같이 거닐던 그 계절이 좋았다고 말했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라며 부질없는 생각을 해 본다. 비단 계절의 탓이 아니었으므로. 그럼에도 깨닫고 마는 것이다.

 

 

“⋯나야말로 무슨 소리야. 여기 우리 둘 말고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래.”

 

 

우리 안의 여름 속엔 이미 네가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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