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사하.png
합작.png

 

 

   그날 밤엔 여름 냄새가 났다.

   하이바라는 올해 들어 처음 맡는 여름 냄새라며 좋아했다. 나는 하이바라 말을 듣고 보니 정말 여름 냄새가 나는 것 같다고 덩달아 좋아했고, 나나미는 아무 말 없이 우리의 박자에 맞춰 걷고 있었다.

   가장 평화로운 순간에야말로 다가올 위험에 대해 대비해야 한다는 걸 이제는 알고 있다.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고, 폭풍전야라는 말이 꼭 그 모양에 걸맞았다. 하지만 그 여름의 우리는 옛말 따위 시시하고 고리타분하다고 여길 뿐이었고 아무도 당장 생기지 않은 위험에 대해 사서 걱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날은 그냥, 여름 냄새가 났고 우리는 일을 깔끔히 끝마쳐 뿌듯했고 아무도 말을 하진 않았지만, 성큼 다가온 여름 냄새를 우연히 맡았듯 우리 사이가 가까워졌다는 사실이 문득 느껴져 유난히 마음이 가벼웠던 날이었다.

   주술고전에는 학생이 몇 없다더니 정말 그랬다. 학교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그래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매일 얼굴을 보고 매일 같은 수업을 듣고 매일 함께 훈련을 받으며 매일 말을 섞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실, 여름이 다가오기 전까지 우리는 ‘우리’라는 말로 한 데 묶이는 것을 썩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하이바라를 뺀 둘을 묶은 ‘우리’였지만.-

 

   그렇게 여름 냄새가 나던 날 밤,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진 우리는 그 이후로 말 그대로 모든 것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좋든 싫든 이미 일상에 스민 사이였고, 그런 우리의 대화 주제는 주로 닥쳐온 현재와 가벼운 미래에 관한 것들이었다. 나와 나나미는 내일 우리에게 무슨 일을 맡길지 어떻게 하면 그 일을 잘 처리할 수 있을지 이야기했고, 그 마지막엔 어김없이 하이바라가 조금 더 먼 이야기를 하며 저녁 시간을 보냈다.

   유난히 진동 폭이 비슷한 나나미와 나의 사이에서 하이바라는 언제나 기분 좋은 윤활제 역할을 했다. 처음 만난 순간에도, 가까워진 뒤에도 우리는 언제나 하이바라가 있어 다양한 생각을 나눌 수 있었고 다채로운 미래를 그려볼 수 있었다. 애정 표현이 그저 낯간지럽고 오글거린다고 생각하던 그 시절의 우리는 하이바라에게 직접적인 감사의 인사를 전한 적이 없었다. 나와 나나미는 그저, 행동과 시간으로 하이바라의 곁에 머물며 나름대로 행복을 영위하며 감사를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진동 폭이 비슷해 사사건건 의견이 부딪히던 나와 나나미의 사이에서 하이바라는 새로운 파장을 일으키며, 우리는 그렇게 ‘주술고전 1학년 삼인방’이 되었다.

   주술고전 1학년 삼인방으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으라면 역시 합심해서 몰래 교칙을 어기던 날 밤이었다. 물론 연습했던 대로 그림을 그리며 멋지게 합을 맞춰 주령을 물리치던 장면들도 기억에 오래도록 각인될만한 일이었다만 비술사였다면 평범한 고등학생이었을 우리에겐 역시 이런 소소한 일탈이 무엇보다도 즐겁게 느껴졌다. -일탈이라고 해봤자 그리 거창한 일은 아니었지만.- 밤에 몰래 기숙사에서 빠져나와 하이바라가 준비한 담요를 사이좋게 나눠 덮고 미리 준비해둔 과자를 먹으며 학교 뒤편에서 달을 바라보며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그 전부였다. 그게 뭐가 그렇게 재미있었는지, 나는 하이바라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숨이 넘어가게 웃느라 바빴고 옆에 앉아있던 나나미는 이러다 들키겠다며 조용히 좀 하라고 내 등을 치곤 했다.

   사실 주술고전 선생님들이 우리의 일탈을 모르지 않았으리라, 지금에 와서 생각해본다. 선생님들이 주술사인 우리가 비술사의 고등학생처럼 굴 수 있는 정말 몇 안 되던 그 시간을 눈감아주셨기에 그날의 추억이 달빛처럼 그 자리 그곳에 머물러 빛났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일상적인 날들이 반복됐다. 일상이라 함은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라는 뜻이므로 주령을 상대하고, 피가 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주술고전으로 돌아오는 일도 우리에겐 어디까지나 일상이었다. 비술사 고등학생으로서의 행동은 어디까지나 일탈이었기에, 우리에게 일상은 세간의 시선으로 본다면 비정상으로 정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몸이 고되고 힘들지만, 실력이 느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고 고된 시간을 홀로 보내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 사실이 가장 큰 위안이 되었다. 그 시절 우리는 누가 뭐래도 셋이 하나였고, 하나가 셋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수요와 공급이 어느 정도 일정한 균형을 이루며 굴러간다는 말을 언젠가 들은 기억이 있었다. 그리고 그 균형이 무너지면 각종 비극이 일어난다는 설명도 들었던 기억이 있다. 예를 들면 인플레이션이라든지, 디플레이션이라든지. 더 자세한 건 분명 중학교 경제 시간에 배웠을 텐데 선생님이 지루하고 흥미가 없었던 탓에 매번 졸아 기억이 잘 나질 않았다. 어쨌든 요는, 무엇보다도 적절한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더운 여름이 다가올 때 즈음, 소위 ‘주술계’라 일컬어지는 이곳은 그 균형이 아주 오래전에 어그러졌단 사실을 슬슬 체감하기 시작했다. 적은 인원. 하지만 끊이질 않는 주령의 출현. 그렇기에 언제나 셋이서 합을 맞출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갓 입학했을 때엔 상황에 익숙해지라거나, 합을 맞춰두면 좋다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대부분의 일을 함께 수행하곤 했다. 하지만 언제나 사회의 시간은 우리들의 시간과는 맞지 않게끔 빠르게 흘러갔고, 그랬기에 우리는 어떤 준비도 없이 홀로서기를 준비해야 했다. 임무에 따라 말 그대로 오롯이 혼자 갈 때도 있었고, 처음 보는 주술사와 합을 맞춰야 하는 순간도 있었다. 그렇게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듦에 따라, 우리는 느낄 수 있었다. 이제부터 이 주술계에서는 우리를 더 이상 학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실수를 용납하지 않고, 결과는 오롯이 책임져야 하며 때로는 목숨이 위험한 상황도 주술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견뎌야 하는 주술사로 여긴다고.

   사랑에 관한 유명한 문구 중에는 이런 말이 있다.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하지만 우리의 관계는 그런 사랑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을까, 전보다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졌음에도 가끔 마주하는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고 심지어는 애틋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렇게 별말 없이 마주하는 눈빛만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하기 시작했을 즈음, 비극이 닥쳐왔다. 가타부타 설명하지 않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우가, 하이바라 유우가 죽었다.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상태로 돌아온 것이 마지막 운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때였고, 우리는 어렸다. 사회가, 주술계가 우리를 하나의 주술사로 인정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낙인을 찍는 행위에 가까웠다. 우리는 객관적으로 어렸고 소중한 동료를 잃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고려하지 않은 사항이 현실이 되어 다가왔고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다. 아무리 뛰어난 반전술식이라 하더라도 이미 죽은 자의 심장을 뛰게 할 수는 없었고, 아무리 뛰어난 주술을 가지고 복수를 한다 해도 이 역시 죽은 자가 살아 돌아올 수는 없었다.

   그렇게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주술고전 1학년 삼인방은 둘이 되었고 우리의 여름은 그곳에서 부서졌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즈음에 여름 냄새가 났다. 우리의 초침은 그해 여름에 멈춰있지만, 우리는 아직도 ‘우리’이며, 셋은 아직도 하나였다.

   그렇게, 올해도 어김없이 여름이 찾아왔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