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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죄송해요. 긴급 안건인데, 당장 남는 인력이 호시미야 씨랑 소민 씨뿐이라….”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쓴웃음과 함께 밀려오는 사죄의 형식은 간결하기만 했지만, 깔끔한 차량 시트에 기대있던 소민의 흥미를 다시 이끌어낼 충분한 힘이 실려있었다. 때문에 여름의 탈피를 증명하듯 울긋불긋한 빛을 띠는 잎사귀들을 무료하게 바라보다가도, 금세 손에 쥐어진 서류 뭉치로 시선을 돌리고 만다. 犬鳴トンネル一級呪緊急案件. 큼직하게 적힌 문구를 얇은 손끝으로 천천히 쓸었다.

 

   한창 교류회를 준비 중인 교내 인원들도 있겠다만은, 주령의 등급으로만 쳐도 족히 1급을 웃도는 긴급이었기에 하는 수 없이 별도의 장소에서 훈련을 이어나가던 1급 주술사 호시미야 료카를 비롯, 1급 주술사의 심사 승인을 마친 소민에게 임무가 내려갔다. 준비할 시간조차 없이 그대로 보조감독인 닛타 씨의 안내에 따라 후쿠오카현으로 향하게 된 셈이었다. 교토고에서는요? 그,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고, 하필이면 오늘 다들 자리를 비웠다나요.

 

   “그, 아실까 하는데. 공포 관련 영상을 업로드 하는 유튜버가 있거든요.”

 

   전해 듣게 된 사건의 전말은 일주일 전 불법 침입한 유명 유튜버가 생방송 중에 그대로 사라져버리게 된 일이 계기라고 했다. 사람들이야 ‘뭐야, 장난?’, ‘슬슬 나와줘.’ 같은 반응을 보였다지만, 거의 매일 꼬박꼬박 방송을 키던 사람이 보이질 않으니 경찰에도 신고가 여럿 접수되었다고 했다. 멍청하게, 그런 곳에 혼자 왜 들어가는 거야? 이야기를 듣다 말고 절로 인상을 구긴 소민이 튀어나오려던 말을 꾸역꾸역 참아냈다. 동행하게 된 닛타 씨가 보충 설명을 따로 덧붙여주지 않아도 이 사항에 왜 긴급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보조 감독 지망생으로서 주술고전에 입학한 소민이 모를 리 없었다.

 

   유명 유튜버라는 입지라도 충분한 영향이 있었을 텐데, 심지어 생방송이었다면 영향의 파장이 어마어마하겠지. 하다못해 단순한 말이나 괴담조차 사람들의 두려움이 더해지면 더해질수록 힘을 얻고, 그를 양분으로 삼아 가상 원령으로 태어나게 되는데…. 실제 주령의 터라면 아마 무시 못 할 힘을 얻었을 것이다. 게다가 무슨 군중심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사건’이 있었다면 그 알량맞은 호기심을 버리지 못한 인간들이 사실 확인이나 실제 체험이라는 명목으로 나방처럼 몰려들겠지. 안 봐도 뻔한 사실이었다. 같잖은 감정 하나에 눈이 멀어 자기가 어디에 뛰어들었는지 구분조차 하지 못하고.

 

 

   “주령은 1급으로 추정 중입니다. 주변을 탐색하던 창들 여럿이 주력이 강한 잔예를 확인했다는 것 같아요. 돌아다니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는지, 아직까지는 터널을 중심으로 반경 5m 정도예요.”

   “터널이 ‘터’인가 봐요.”

 

   무의식인지, 소민은 창들의 조사에 따라 주변을 돌아다닌 주령의 행선지를 확인하며 혼잣말을 흘렸다. 그 단어가 무엇을 지칭하는지 어렴풋이 알아차린 닛타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을 표했다.

 

   “원래 이누나키 터널이라는 괴담 자체는 흔하게 떠돌았잖아요? 확인해보시면 아시겠지만, 과거에 실제로 이누나키라는 1급 주령을 이미 한 차례 처리했다고 하더라고요.”

 

   매끄럽게 핸들을 돌리며 라디오의 볼륨을 줄인 그가 미약한 숨을 내쉬며 곧장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주령은 처리했어도…주령이 벌였던 사건들을 완벽하게 덮을 수는 없던 노릇이죠. 그런 자잘한 소문들이 계속 쌓여서 몇 년 전 4급 정도의 가상 원령이 태어나긴 했나 봐요. 이미 터널이 폐쇄되는 바람에 정식적으로 등록 절차를 밟지는 않았지만, 덕분에 점차 힘을 키워가다 보니 이런 일까지 터지게 된 모양이에요.

 

   마지막 보고와도 같은 말을 끝으로 차량에는 표하지 못할 정적이 내려앉았다. 이번 임무도 만만치 않을 거란 일종의 신호탄이었다. 하여튼 썩어빠진 주술계, 심사 최종 승인을 앞둔 열다섯 고교생의 등을 떠미는 꼴이라고는. 저는 입술을 비죽이는 반면, 잠시 살펴본 호시미야는 미동조차 하지 않으며 사무적인 태도로 자료를 살펴보고 있었다. 이걸 안심이라고 해야 해? 선생님은 늘 일관적인 태도라 도리어 보는 제가 마음이 놓이네요. 바람 빠지는 웃음을 그려낸 소민은 이어 힐끗, 운전석에 있던 닛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곤란한 듯이 눈썹을 잔뜩 늘어트린 채로, 백미러를 살피던 그와 찰나 눈이 맞닿았다. 제 책임이 아닌데도 미안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아, 이제 곧 공항이에요.”

 

2.

   차에서 내리자마자 그대로 공항에 들어서서는 무슨 정신이었더라.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하늘이 꽤 푸르렀고, 제법 선선해진 공기가 마음에 들었다는 점은 알겠는데. 맞아, 그리고 비즈니스석에는 처음 타봤지. 나름의 진귀한 경험이었는데도 어째 가슴이 부푼다거나 설레는 감각 따위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또네. 자각하기 무섭게 느껴지는 끔찍한 공허. 마음 한쪽이 무너지는 그 끔찍한 감각에 이제는 슬슬 익숙해질 무렵도 되었는데. 홀로 과거에 얽매여 천승떠는 짓은 관두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원하는 대로 따라주지를 않는다.

 

   안녕. 태어나서 처음 만난 사랑이 좋아한다는 연락을 남겨두고서는, 고작 세 시간 동안 연락을 보지 못했다고 세상을 떠났다고 들었던 심정이 어떤지 아시나요? 일반인들을 모를 영화 같은 비극이 우리에게는 일상과도 같다. 언제나 죽음과 함께 하는 주제에, 사랑이라는 저주에서 벗어나질 못해서 우리는 스스로를 구렁텅이로 밀어 넣으며 살아간다는 점이 그저 처량하기만 했다. 알고 있었는데,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두 사람에게는 영원할 것만 같았다는 진부하고도 처량한 멘트가 우습게도 변명이라면 변명이었다.

 

   상대에게 사형 집행 유예 따위의 타이틀이 붙은 걸 알면서도 그 아이의 다정을 마음에 품은 죄라기엔 마냥 억울했다. 먼저 좋아한 건 내가 아니었으니까. 제게 호감을 가지고 다가오는 사람을 매정하게 쳐낼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어. 안 그래도 언어조차 제대로 통하지 않는 타국에서, 내 외로움을 채워주기 위해 먼저 손을 내민 건 너였잖아. 그러니 이타도리 유지, 이 모든 게 네 탓이라고. 실은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원망을 거둘 수는 없었다. 이렇게까지 화살을 돌리지 않으면 멀쩡히 땅을 딛고 있던 나마저 여름의 물거품이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고독을 책임져줄 것처럼 굴더니 더한 파도를 주고 떠났지. 처음 부고를 전해 들었을 때에는 방안에 틀어박혀서 나올 수가 없었다. 온통 봄의 흔적이 남아있는 그 교정을 거닐고 있을 자신이 없었으니 당연한 순서였다. 그런 제게 찾아온 담임 선생님 덕분에 그나마 이런 일상에서 살아갈 수 있었던 거지만…. 그래도 얼마 전에는 메구미가 그 아이의 잔해를 정리하는 모습도 똑똑하게 지켜볼 정도가 되었다. 물론 내내 입술을 물고 있는 바람에 다 부르트고 말았지만, 두 눈으로 똑똑히 과거를 보내주지 않으면 나까지 휩쓸릴까 겁이 나는 통에 악으로 버티고 서있었다. 누가 열다섯 아니랄까 쏟아지는 주간 소년 점프의 표지들부터 시작된 것들로 마음은 온통 너저분하기만 했다.

 

   “그 이기적인 새끼, 그렇게 비겁하게….”

 

   떠올리지 않기로 했지만, 틈만 나면 이렇게 빈자리를 상기시켜주고는 해서 곤란했다. 내가 그 빗속에서 몇 시간을 서 있었는지 너는 모르겠지. 하늘은 우중충하다 못해 꾀죄죄했고, 도쿄에는 장마가 내렸지만 내 마음속에는 폭풍이 일었다. 내 뺨을 타고 흐르는 게 눈물인지, 빗방울인지 모를 정도로 펑펑 울다 목이 쉬었는데도 너는 끝내 돌아오는 법이 없었다. 참 잔인한 이별 방식이었다.

 

   한국어로 낮게 읊조린 욕설에 옆에 있던 호시미야 씨가 은근한 시선을 건넨다. 으음…, 제가 한국어를 쓸 일이 아무래도 욕밖에 없기는 하죠?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괜히 가슴이 쿡쿡 찔려 다시 입을 꾹 다문다. 기내에서는 곧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3.

 

   다시 땅 위를 밟은 세 사람은 잠시 쉬지도 못한 채 곧바로 움직여야 했다. 멀미라도 날 것 같지만 그런 개인 사정 따위 봐주지도 않겠지. 자비 없는 일정을 한탄할 틈도 없이 차량에 올라탔다. 오늘 스스로가 유독 날이 서 있다는 걸 알면서도 감정을 쉽게 갈무리할 수가 없었다. 자꾸만 기묘한 불안감이 일었다.

 

   사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들었으니 남은 건 간략한 현장 안내, 호시미야 씨로부터 듣게 된 주의점 몇 가지가 끝이었다. 나무와 풀이 무성해 들어갈 때 시야가 가릴 수 있지만, 이건 현장에 나가 있던 창들이 수습했으니 괜찮을 것이라는 점이라거나 하는 것들. 벌레가 좀 많다고 하던데 소민 씨가 괜찮으려나. 긴장에 얼어붙은 분위기를 느슨하게 해주기 위함인지 닛타 씨 만이 이곳에서 가볍게 시선을 던질 뿐이었다.

 

   시시각색 변하기 바쁜 창밖을 얼마나 바라보고 있었을까,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주변은 온통 나무와 풀 뿐이었다. 그야말로 첩첩산중. 뭐…. 하기야 터널인 데다, 이미 폐쇄된 지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당연한 사실이기는 하지. 이제 막 점심을 넘겼던 도쿄에서 출발해 땅거미가 지는 저녁이 되어서야 도착한 이누나키 터널은 암묵적인 불쾌감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살기에서 흐르는 오싹함의 원천, 싸늘한 한기 속에서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은 소민이 힘의 주축인 호시미야와 함께 걸음을 내디뎠다. 한때 무속인으로서 활동했던 소민에게는 이미 삶과 같은 존재이니 도리어 겁나지도 않았다.

 

   “어둠에서 나와 어둠보다 더 검게, 그 부정함을 씻어 정화하라.”

 

   가히 예고와도 같은 언질을 끝으로, 황혼의 시간에서 이른 밤을 맞이한 두 사람이 가볍게 이누나키 터널의 벽을 뛰어넘었다. 짐승의 아가리라도 되는 듯, 축축하게 내려앉은 습기와 끝없는 어둠의 세상을 마주한 소민이 제 스승의 곁으로 조금 더 달라붙었다. 피안을 건넌 기분만큼은 아무래도 썩 유쾌하지 않은 탓이다.

 

   “떨어지지 마.”

   “네에.”

   “그리고.”

   “선생님이 위험에 처하면, 도와줄 생각은 하지 말고 그대로 터널 밖으로 나가라고요?”

 

   컴컴한 어둠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한 쌍의 눈동자가 빛을 내었다. 각각의 흑백을 품은 시선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떨어져 저 너머의 광경을 응시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는 널 우선순위로 지킬 거야. 그러니 너도 미련 따위는 던져두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널 먼저 생각해. 아직 죽음을 무서워해도 되는 나이니까. 차분하지만 흔들림 없이 올곧은 목소리였다. 제 담임이 선생님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꼭 듣고 있노라면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지게 만드는 태도에 이루어지지 못할 말을 슬쩍 내던지고 만다. 이제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두 명 몫의 발걸음을 따라 바닥에 얇게 깔린 물에서는 파동이 일었다. 온갖 쓰레기와 오물이 여기저기 널려있는데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온 신경을 주력의 흐름에 쏟고 있는데도, 점점 더 어두워지는 터널은 폭풍전야처럼 조용하기만 했다. 기이한 정적에 머릿속에서는 익숙한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소름 끼친다느니 뭐니, 그러는 너희들도 주령이잖아. 인간보다 주령이 더 겁을 먹으면 어떡해? 아주 제대로 뒤바뀐 처지에 낮게 혀를 차니 지금 무시하는 거냐며 또 길길이 날뛴다. 이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유일한 존재들 덕분인지, 마지못해 긴장이 서서히 풀려가고 있었다. 눅눅한 공기가 전신에 퍼지고, 퍼지고? 소름 돋는 감각은 저만 알아챈 게 아니었는지, 호시미야가 급히 저를 뒤로 물렸다.

 

   어라.

   그런 급박한 상황인데도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무어라 말을 하고 싶어도, 물이라도 먹은 종이처럼 목소리조차 나오질 않았다. 아, 좆됐다. 시력을 점차 잃어가는 끔찍한 감각에 급히 손을 휘젓지만, 이미 몸은 무게중심을 잃고 기우뚱 넘어간다. 이런 건, 설명에 없었는데. 물론 모든 상황을 염두에 두고 고려해야 한다고는 하지만…. 귓가에 앵앵 울리는 잡음을 끝으로, 육신이 대번에 가벼워졌다.

 

 

4.

   코끝에 맴도는 내음이 습하다. 피부에 붙어오는 열기는 끈적끈적한 불쾌감을 만들어내고, 귓가에 선연하게 울리는 매미의 울음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여름을 고하고 있었다. 창가에 걸어두었던 퐁경이 약한 바람에 따라 흩날려 청아한 음색을 낼 즈음에야 까마득했던 정신이 다시 돌아오고 말았다. 잠깐, 여름? 그럴 리가 없는데. 그보다 여기는…. 찌르르, 골을 울리는 두통을 이겨내 몸을 일으키니 보이는 광경이 지나치게 익숙했다. 말도 안 돼. 소민이 눈을 끔뻑이다, 소매로 벅벅 문질러 다시 닦으며 확인했다.

 

   가지런한 책상 위로 익숙한 과자 봉지가 군데군데 널려있고, 쓰다 말았는지 펼쳐진 채로 삐뚤게 놓여있는 다이어리의 한 켠에 적혀있던 7월은…, 아직 채 완벽하게 아물지 않은 상처의 틈을 짓이겼다. 아니, 아닐 거야. 무의식적으로 덜덜 떨리던 손끝으로 오늘로 추측되는 날짜를 향해 나아간다. 매끄러운 종이의 감촉이 지독하게도 생생했다. 창문을 타고 공간을 비추는 햇빛은 사그라들 생각조차 없었던 그 날.

 

   겹쳐진 동그라미 두 개, 그 주위를 잔뜩 꾸미고 있는 별의 흔적들이 오롯이 단 하루를 가리키고 있었다. 한여름의 악몽. 장마가 시작되기까지, 비가 오기까지 남짓한 열아홉 시간.

 

   바야흐로 첫사랑이 죽기 하루 전.

 

 

5.

   분명 1급 임무였을 텐데, 어떻게 이런 온전한 영역을 구현했지? 팽팽 도는 머릿속에서는 상황의 위험을 알렸다. 이 생동감 넘치는 곳에서 확신을 가지고 있는 점이라고는 내가 지금 닥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미성숙하지는 않았다는 것뿐이었다. 조금만 방심하면 이대로 삼켜질 거야. 일상처럼 들려오던 목소리들이 들리질 않는 걸 보아 아무래도 당장 힘을 쓰기는 힘들 것 같았다.

 

   우선 둘러보는 게 나으려나? 삼십 분이 넘도록 자리에서 미동조차 하지 않던 소민이 결국 등이 떠밀리듯 문으로 향했다. 희미한 쇳소리와 돌아간 문고리 너머에는 텅 비어버린 복도가 기다리고 있었다. 주춤거리던 발걸음이 배회하듯, 낡아빠진 판자를 느릿느릿 걷다 보니 기숙사 밖의 풍경이 서서히 눈에 들어왔다.

 

   “아, 눈부셔.”

   “왜 이렇게 늦어?”

   “…….”

 

   “잘 잤어, 소민?”

 

   우뚝.

   쨍하니 내리쬐던 햇빛에 차양을 만들고는 인상을 구긴 친우의 갈빛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그를 응시하다 무덤덤한 눈빛으로 짤막하게 인사를 건네는 동급생을 끝으로 또 다른 누군가와 시선이 맞닿았다. 온화한 갈빛으로 빛나던 눈이 햇빛을 받아 금색으로 빛나, 초점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백의 눈동자를 마주하며 그가 다정히도 미소짓는다.

 

   아,

   다시 재앙이구나.

 

   메마른 얼굴을 부분적으로 채우고 있던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얼굴 근육이 뜻대로 따라주질 않음을 직감한 소민이 끝내 먼저 시선을 피했다. 왜, 하필 지금…. 읊조리던 목소리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래, 아침부터 불안했어. 내 여름은 이미 다 지났는데 오늘은 자꾸만 목이 말랐다고. 누가 내 수분을 다 집어삼키는 마냥 마르다 못해 금이 갔지. 표독스럽게 트인 백안이 거짓으로 이루어진 하늘을 바라보기 무섭게 미처 숨기지 못한 헛웃음이 튀어나온다. 상상 이상으로 악독한 놈이네, 이거. 손톱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세게 주먹을 말아쥐는데도 느껴지는 건 아픔 따위가 아닌 공허라는 사람이 지독히도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안 돼, 정신 차려.

 

   “으음, 안색이 안 좋은데. 괜찮아?”

   “……손대지 마.”

   “응? 미안, 못 들었어. 더워서 그런 거면 콜라라도 사다 줄까?”

   “야, 더운데 무슨 콜라야?”

   “아니아니, 소민은 교내 자판기에서 콜라를 제일 좋아하는데?!”

 

   평화롭고도 행복했던 우리의 잊을 수 없는 여름을 마주한 백안의 위로 점차 녹음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제발. 울음에 일그러진 속삭임은 끝내 맺히지 못한 채, 아지랑이 사이로 녹아들어 사라졌다. 고작 그 대화 하나로 서서히 전신의 힘이 풀려가고 있었다. 옳지 못하다는 걸 알면서도, 미성숙한 이에게는 응당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세차게 흔들리던 동공이 서서히 푸름에 잡아먹힌다. 따라붙는 변명과 합리성은 덤이었다. 그래, 이건 꿈인걸. 나는 잠깐 잠든 거고…. 현실과 환상의 경계선을 아찔하게 거닐던 유일한 존재는 결국 이겨내지 못하고 그 시절의 저처럼 맑게 웃음 짓는다. 그러니 영원히 이곳에서 행복하길 바랄게. 누군가 구렁텅이로 밀어 넣듯 귓가에 속삭였지만 눈치챌 여유 따위 이미 한 톨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타도리 유지가 수몰된 이래, 늘 악몽만 꿈꿔왔던 소민의 가장 큰 약점을 쥔 여름이었다. 이런 행복한 꿈은 처음이니 우선 만끽해보길 바라. 끝나지 않는 오늘에 갇혀 현실을 망각할 즈음에는 내가 네 봄을 기꺼이 삼키러 오겠노라 고했던 울림이 곧장 흔적을 감췄다.

 

 

6.

   그날과 다른 것은 없었다. 평온하게 제 갈 길을 위해 바삐 몸을 움직이는 구름, 광활한 푸름과 작열하는 태양 아래 살아 숨 쉬는 모든 것들이 그랬다. 담임이었던 고죠 선생님은 임무로 자리를 비웠고, 작은 소음을 내며 돌아가는 선풍기 하나에 기대어 수업을 듣는 네 사람의 인영은 교실에서 저마다의 개성을 드러내며 제각기 자리 잡았다. 유지는 수업을 듣다 말고 꾸벅꾸벅 졸더니만 기어코 선생님에게 한 소리를 들었고, 덕분에 걸리지 않은 노바라가 다시 자리를 정돈하는 중에도 메구미는 그런 두 사람을 쳐다보지도 않더란다. 턱을 괴고 창밖을 일순 응시하던 소민의 교과서에는 버릇처럼 그리던 낙서들이 구석구석에서 얼굴을 비출 뿐이었다. 한가롭지만 꼭 그만큼 아름다웠던 과거에 정신을 빼앗긴 이질적인 봄이 환하게 웃었다.

 

   함께 점심을 준비하고, 다시 오후의 수업을 듣고 나면 오후에 무엇을 할까에 관한 줄기찬 토의가 이어졌다. 밖에 다녀오자. 무단 외출은 사양이거든, 그보다 더워. 앞서 걷는 두 사람의 뒤를 따라서, 걸음을 나란히 하던 둘이 서로 말없이 시선을 건넸다. 아직 애들이라니까. 입 모양으로 천천히 의사를 건넨 소민의 언어를 알아챈 메구미가 설레설레 고개를 저으니 잘게 웃음이 터진다. 이럴 때 굳이 끼어들고 싶지 않다는 무언의 의사였다. 알았어. 물론 그런 와중에도 반짝이던 두 눈은 여전히 단 한 사람에게 꽂혀 벗어나지를 않는다. 저와 닮았음에도, 조금 다른 색상의 분홍빛 머리카락. 다정한 그 이름을 속으로 되뇌었다. 꼭 맞는 울림이 심장을 기분 좋게 두드리는 탓에 걸음이 한결 들떴다. 저 멀리에서 네 사람을 반겨주는 안식처는 사랑스러운 환영 인사를 건네주고 있었다.

 

   작은 실랑이를 끝으로 다 함께 게임을 즐기다가 지쳐, 간단한 저녁을 챙기고 나서 내일 보자는 짧은 인사 이후로는 모두 각자의 방에서 시간을 보낸다. 다를 것 없이 다이어리를 쓰고, 핸드폰을 보며 침대에서 뒹굴거리면 어느덧 열두 시가 넘어간 밤이 찾아왔지만 소민의 일과만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1시 13분을 기억해? 기억 속에 또렷히 남아있던 새벽의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전신의 피가 빠르게 돌기 시작한다. 두근, 두근. 맥박을 따라 고동치는 심박수가 낯설게 다가오면…, 띠롱. 낮지만 경쾌한 알림이 상태바의 위로 떠오른다.

 

   - 아직 자?

 

   아니. 곧장 라인에 답장을 보내자마자 다음에 올 말을 예상한 소민이 곧장 얇은 겉옷을 하나 꺼내 들었다. 그럼, 잠깐 산책할래? 예상처럼 따라붙는 제안에 ‘좋아.’라며 급히 답을 보내고 자리를 나선다. 혼자서는 도무지 견디기 어려울 만큼 캄캄한 외로움에서 몰래 빠져나온 소민의 얼굴에는 형용할 수 없는 설렘이 가득했다.

 

7.

   기숙사를 나서면 아직 후덥지근한 공기를 쐬고 있던, 내 모든 멸망을 일으켰던 그가 변함없는 미소로 나를 반긴다. 현관에 마주 보고 선 두 사람의 사이로 스포트라이트와 같은 달빛이 쏟아지면,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만나 한여름의 밀회를 다시 만끽하기 위해 체온이 다른 두 손을 열망하듯 마주 잡는다. 한 명에게는 처음일, 또 다른 한 명에게는 이제 두 번째로 맞은 무대. 서투른 춤을 추듯이 내디딘 걸음에 힘이 실렸다. 보고 싶었어. 꺼낼 수 없는 한 마디에서 나오는 씁쓸함을 애써 뒤로 미뤄 보인 소민이 순간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그 자리에 다시 멈추어 선다.

 

   “가지 마.”

   “음, 소민? 갑자기 무슨 소리야.”

 

   내일 어디에도 가지 마. 본능적으로 뱉은 명령과도 같은 한 마디, 이타도리가 낯선 의문을 품는다. 제발. 불안함에 볼품없이 구겨진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상대에게는 이윽고 대답이 없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무슨 일이라도 있어? 말을 섣부르게 꺼내지 못한 이유는 평소 자신이 알던, 부드럽게 웃어주던 눈빛이 빛을 잃어 언제라도 무너져버릴 것처럼 위태로웠기 때문이었다.

 

   곤란하네. 제 손목을 그러쥔 손이 파들파들 떨려오고 있었다. 어디 아프기라도 한 건지…. 여름의 이타도리로서는 단연코 소민의 불안을 이해할 수 없는 게 당연한데도, 버릇처럼 반복하는 말에는 일절의 변화가 없었다. 그냥 여기에 있어,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절대. 초췌한 안색의 소민이 웃음 짓는다. 내일 네가 가지 않으면 돼. 네가 안 가도 되는 거잖아. 결말을 아는 이와 그를 모르는 자의 대화가 멀쩡히 이루어질 리 없었다. 그럼에도 소민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대답해. 그러겠다고 하라고. 응, 그럴게. 일단 안심을 시켜줘야 하려나, 상황의 타개책을 마땅히 찾아내지 못한 이타도리가 기약하지 못할 대답을 잇는다. 이내 찰나, 한쪽 눈썹을 찡그리다 말았다.

 

   네가 거짓을 고할 때 나오는 습관이었다.

 

8.

   가시지 않는 더위는 물론, 이 기이한 영역 안에서 잠을 설치는 일은 당연지사였다. 덕분에 한없이 무겁기만 한 눈꺼풀을 밝혀오는 빛을 이기지 못하고 주섬주섬 몸을 일으키고 만다. 오전 7시 38분, 핸드폰의 액정 위로 떠오른 숫자를 멍하니 내려다보니 문득 의문점이 떠올랐다. 햇빛? 그럴 리가 없는데. 그 아이가 떠나간 날에는 아침부터 온통 비가 퍼부었잖아. 아직도 끔찍하게 생생한 그 날의 기억을 결코, 그 누구도 아닌 소민이 잊을 리 없었다. 아니야. 희게 질린 낯빛이 곧바로 다시 시간의 위에 적힌 날짜를 확인했다.

 

   어제와 달라지지 않았어.

   허탈함에서 비롯된 웃음이 곧 나를 죽이기 시작했다. 어제보다 조금 더 몰려온 피곤함이 영역의 특성에 대해 말해주고 있었다. 행복과 절망은 고작 한 끗 차이라고. 네가 행복을 갈구할수록 네 육신은 서서히 이 계절에 빼앗기겠지. 내 생명을 먹고 자라는 여름은 그 시절과 같이 다른 게 없었다. 피부에 붙어오는 열기는 끈적끈적한 불쾌감, 귓가에 선연하게 울리는 매미의 울음, 창가에 걸어두었던 퐁경이 약한 바람에 따라 흩날려 청아한 음색을 내는 광경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내게 말했다. 이 지독하고도 사랑스러운 지옥에서, 너는 무슨 선택을 할 것이냐고.

 

 

9.

그래서 있지, 오늘이 며칠이더라?

 

 

10.

   “잘 잤어, 소민?”

 

   몇 번째인지도 모르는 질문에 답할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아, 희미하게 웃음으로 답을 대신한 소민이 힘없이 걸어 겨우 교실에 다다랐다. 행복, 행복, 행복. 지금의 행복에 눈이 멀어 끝내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한 게 벌써 며칠째였지. 오늘은 몇 번째의 오늘인가. 이성적으로는 그를 보내야 한다는 것따위 이미 알고 있는데, 막상 다정으로 물든 눈빛을 마주하면 자꾸만 바보처럼 감정이 앞서버려서….

 

   내 생명을 거름으로 자라난 무한한 여름, 지겹도록 반복되는 하루는 이제 정말 끝을 달리고 있었다.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움직이는 것조차 버거워 식은땀이 흐르는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남아있던 이성들은 마구잡이로 부딪히다 곧장 단 하나의 결론을 도출해낸다. 아마 오늘이 마지막이 되리라. 내일의 나는 영원히 이 세계에서 똑같은 하루를 살아갈지, 모조의 여름을 깨부수고 가을로 넘어갈지의 마지막 선택이 기다리고 있다고. 정말 죽는다. 어느새 코앞까지 나를 쫓아와, 금방이라도 목을 조를 듯 뻗어온 손길에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쓰러지지 않으려 입술을 물어 기어코 피를 보면서까지 하루를 보내고, 짙은 어둠이 깔린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문에 기대서는 죽 미끄러져 주저앉았다. 마지막이 되어서야 알아차린 건, 창문 너머로 스산한 달빛이 스며들고 있었다는 점이다. 영역을 넓히듯 조금씩 퍼지던 빛무리가 늘어진 소민의 발끝에 닿으면, 내내 소매에 숨겨두었던 커터칼 하나가 바닥에 부딪혀 기괴한 소리를 냈다. 끔뻑. 무겁게 깜빡이던 눈꺼풀을 무슨 정신으로 버티고 있었더라, 그것까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꺼지기 직전의 호흡이 트이던 때, 갑작스럽게 핸드폰 액정이 빛을 밝힌다. 이제는 시간을 보지 않아도 알았다. 1시 13분을 알리는 알림. 아직 자? 파들파들 떨려오는 손끝으로 겨우 핸드폰을 집어든 소민이 답장을 위해 한 글자씩 타자를 두드려 의사를 전했다. 아니. 그럼, 잠깐 산책할래? 응. 일련의 패턴처럼 이어지는 대화가 끝나기 무섭게 소민이 바닥에 가라앉은 가을을 슬며시 쥐었다. 영역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얕잡아봐도 너무 봤다. 차라리 첫날이었다면 모를까, 이렇게 적응할 시간까지 주다니. 세상의 모든 주술사가 이타적이라고 생각하는가. 소름 끼치도록 입꼬리를 끌어올린 소민이 웃었다. 지금도 고전에서 교류회 준비를 하느라 바쁠 제 동급생의 말을 빌리자면…. 주술사는 히어로가 아니다. 생판 모르는 허울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가?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어.

 

   복도를 따라 거니는 발걸음이 익숙한 곳으로 향한다. 다섯 번을 걸어 코너를 돌 적이면 잔뜩 초췌해진 얼굴을 보면서도 너는 다를 것 없이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것도 이번으로 마지막이 될 테니 기꺼이 그 파란을 함께하겠노라, 손을 겹쳐 올린 소민이 느릿하게 웃는다. 있지, 이타도리. 드물게 이름이 아닌 성으로 칭했다는 걸 알아차린 그가 꽤 크게 눈을 뜨고서 선뜻 답을 내어놓지 못한다. 애초에 바란 일도 아니었으므로, 빳빳하게 굳어버린 그를 흘겨보던 소민이 점차 그 몸을 타고 오른다. 단숨에 가까워진 체온을 맞대고, 감히 죽은 이의 온기를 흉내 내던 그 등을 느릿하게 쓸어내린다. 갈 곳 잃은 손이 꽤 능숙히 소민의 무게를 받드느라 일순 가라앉은 눈길을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거 알아?”

   “응?”

   “나, 이제 여름은 지긋지긋해.”

 

   숨이 막혀 죽어버릴 것 같아서.

   죽음을 목도한 네 심정을 나는 알 수 없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용맹했느니, 당당했느니 결국 당사자에게 듣지 못하면 진실인지 거짓인지 몰라. 하지만 적어도 나는 무섭다. 죽을 것 같다며 울부짖어도 실은 내 숨이 끊어지는 게 너무 무서워. 거창하게 세계와 나,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하는 수 없이 세계를 택하겠지만…. 만약 타인과 나,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쉽게 상대를 보내줄 심성이 안 되거든.

 

   “그래서 지금도 악착같이 살아있던 거잖아.”

 

   너를 따라가지 않고. 무슨 소린지 알지? 달빛이 아름답게 내리쬐던 무대, 해사하게 웃음 짓던 그 작은 손의 위로 따뜻한 액체가 내려앉는다.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여름의 네가 수마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는 순간, 깨지지 않을 것처럼 견고했던 세계에 다시금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그토록 오지 않았던 비가 내린다. 툭, 투둑. 뺨을 타고 흐르던 물방울이 머리를 적시고, 끝내 제 모든 여름을 잠식시키는 꼴을 바라보던 눈이 곧장 생기를 잃었다. 그토록 행복을 갈구하던 날이 다 무엇이었는지. 고작 1분 남짓하던 시간에 모조리 끝나버릴 허상 따위에 얽매이게 만들고. 네 죄야. 죽음을 떠안았다면 그 책임까지, 모두 네가 가지고 가.

 

   안녕, 내 첫사랑.

   이윽고 눈앞이 하얗게 점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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