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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에 머물렀던 것

 

 

 

   일본의 여름은 무척 덥다. 하늘 높이 뜬 해는 그늘질 구석 없이 강렬하게 내리쬐고 높은 기온은 숨을 턱턱 막히게 한다. 한국의 여름과 비슷하면서 다른 일본의 더위 그럭저럭 적응 할 수 있었으나 적응할 수 없는 딱 한 가지가 있다면 습기였다. 섬나라인 탓인지 공기 중에 머금은 습기가 살인적이었다. 공기 속에 물기가 섞인 게 아니라 물속에 산소가 섞인 것 같았다. 나는 입을 벌리고 커다란 어항에 갇힌 금붕어처럼 뻐끔거렸다. 습도 높은 공기 사이에서 산소를 조금이라도 더 취할 작정이었다. 가족과 떨어져 아는 얼굴 하나 없는 타지에 똑 떨어진 내가 일본의 습기에 익숙해지는 일은, 비슷한 듯 다른 문화에 익숙해지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나에겐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 그 재능을 알아본 이상한 단체가 사이비틱한 종교를 믿는 학교에 날 강제로 옮겼을 때도 이것보단 잘 적응했다. 아무튼 그럴 정도로 일본의 여름은 덥고, 숨 막히며 의욕을 뚝뚝 떨어트리는 데 한몫했다.

 

 

   대부분의 목조로 이루어진 이 학교는 주변이 온통 숲이었다. 주변이 숲이라는 건, 높고 푸른 나무가 많다는 소리였고, 그 탓에 그늘이 많았다. 햇빛이 들지 않는 공간에선 기분 좋은 바람이 솔솔 불었다. 벌레가 자주 나온다는 건 단점이었지만 살갗이 탈 것처럼 덥지 않으니 그런대로 버틸 만 했다. 갑작스럽게 학교를 옮긴 나는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동급생들과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한 학년에 학생 수가 턱없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동급생인 아이들이 친절하고 상냥했다. 하이바라 유우는 천성이 밝고 긍정적이었으며 붙임성이 좋았다. 나나미 켄토는…. 첫인상이 좋지는 않았다.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 없으나 눈매가 나빴고 눈초리도 매서웠으니까. 그렇지만 내 생각과 다르게 예의 바르고 상대의 선을 지킬 줄 아는 애였다. 상대방이 그어놓은 선이라는 게 알아차리기 쉽지 않은데, 걔는 그걸 잘했다. 어지간히 섬세하고 다정한 면을 가진 애였다. 나는 비슷한 듯 다른 두 사람의 도움으로 손바닥 뒤집듯 바뀌어버린 환경에 비교적 쉽게 적응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임무가 없는 날이면 나나미의 방에 모였다. 나나미의 방이 가장 깔끔하고 쾌적하니까. 나무로 된 문을 쿵쿵 두드리면 묵직한 노크음이 복도를 가득 채웠다. 노크 소리가 나고 약 5초. 가지런한 미간을 찌푸린 나나미가 방문을 열었다. 나나미는 늘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결국 우리에게 방을 내어줬다. 우리는 한방에 둘러앉아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눴다. 주로 하이바라와 내가 떠들었고 나나미는 우리의 헛소리에 딴지를 걸거나 간간이 핀잔을 주며 책을 읽기에 바빴다.

 

 

   “나나미. 나 배고파.”

   “그러게,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

 

 

   나나미는 노골적으로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우리를 쳐다봤다. 하이바라와 눈이 마주친 나는 그와 짜맞춘 것처럼 웃으며 나나미에게 소리쳤다. 밥 줘. 나나미는 경멸하는 눈초리로 한참 우리를 노려봤다.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고, 나와 하이바라는 나나미의 눈빛에도 굴하지 않고 생글생글 웃었다. 터무니없는 억지에도 나나미는 언제나 우리에게 져주었다. 읽던 책을 소리 나게 덮은 나나미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기숙사 방에 자그맣게 딸린 주방 앞에 서는 모습은 익숙하고 또 능숙했다. 나나미는 자신의 키보다 작은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내 조리대 위로 척척 올렸다. 하이바라와 함께 작은 하이파이브를 한 나는 곧장 나나미에게 시선이 기울었다.

 

   나나미는 입맛이 까다롭다. 하이바라가 이야기해줬다. 음식에 대한 호불호가 확실하고 맛을 잘 느낀다고. 그리고 생각보다 대식가라고 했다. 하긴, 종종 그가 늘어놓고 먹는 빵의 가짓수를 보면 이해가 되는 이야기였다. 나나미는 자신의 입맛 탓인지 요리도 곧잘 했다. 주술사는 기본적으로 혼자 행동하거나 지내는 일이 많으니 가사 능력도 대부분 뛰어나다고 하던데. 나는 그런 쪽으론 젬병이었다. 하이바라는 나나미를 돕겠다고 몸을 일으켜 싱크대 쪽으로 조르르 달려갔다. 자그마한 공간에 큰 두 남자가 허리를 숙인 채 엉겨 붙어있는 게 조금 우습고 평화로웠다. 나는 어차피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얌전히 기다리는 게 가장 큰 도움이었다. 침대에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켜 냅다 드러누웠다. 뽀송뽀송한 섬유유연제 냄새가 풍겼다. 이불자락에 얼굴을 묻고 반쪽짜리 시선으로 두 사람을 쳐다봤다. 분주히 움직이는 손놀림이나 그 손놀림에 엉겨 붙는 생활 소음이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칼이 도마와 부딪히는 소리, 나나미와 하이바라의 대화 소리, 싱크대로 쏟아지는 물소리. 눈이 가물가물 감겼다.

 

   “일어나세요.”

 

   물에 잠긴 것처럼 먹먹한 정신을 일으키는 기분 좋은 저음이었다. 손가락을 꿈지럭 이며 늑장을 피우자 나나미가 손을 뻗어 가볍게 내 머리칼을 흐트러트렸다. 부드러운 손놀림으로 시야가 엉망이 된 나는 마지못해 몸을 일으켜 앉았다.

 

   “알았어... 벌써 다 됐어?”

   “간단한 음식이니까요.”

   “샌드위치야!”

 

 

   부드러운 저음 위로 경쾌한 음성이 겹쳤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입매 끝을 당겨 꾹 참고 눈앞에 내민 접시를 쳐다봤다. 새하얀 접시 위에는 노르스름하게 잘 구워진 빵 사이로 양상추, 토마토, 햄이 보였다. 공용주방까지 내려가지 않고 끝낼 수 있는 메뉴 중에 알맞은 음식이었다. 침대에서 내려온 나는 셋과 둘러앉아 샌드위치를 먹었다. 아삭아삭 씹히는 양상추는 신선하고 토마토는 새콤달콤하며 싱그러웠다. 얇게 저며진 햄은 적당히 짭조름해서 빵 안쪽에 발린 고소한 마요네즈와 잘 어울렸다. 입안 한가득 나나미의 샌드위치를 씹으며 웃음을 함께 삼켰다.

 

   손에 묻은 소스를 입에 가져가다 나나미와 눈이 마주쳤다. 엄지손가락을 입에 문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보일 거 같았다. 황급히 입안에 담긴 손가락을 빼자 눈치 없게 쪽, 하며 소스를 빨아당긴 야무진 소리가 났다. 멋쩍은 웃음을 짓자 나나미는 가만 바라보다 설핏 웃었다.

 

   “입에 맞는 거 같아 다행입니다.”

   “나나미가 해준 건 다 맛있어.”

 

   하이바라가 나나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덧붙였다. 침으로 젖은 손가락을 접어 쥔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맛있어. 잘 먹었어 나나미. 고마워.”

 

 

*

 

 

   하이바라 혼자 임무를 갔다. 보통은 두 명이 가거나 다 같이 가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오늘은 그럴 필요가 없는 일이었던 거 같다. 걱정스러워하는 나를 두고 하이바라는 웃으며 다녀오겠다고 특유의 쾌활함이 담긴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나와 나나미는 하이바라의 모습이 점이 될 때까지 그를 배웅했다.

 

   하이바라가 없는 자리는 지나치게 조용했다. 나나미는 말이 없으니까. 하이바라와 있으면 말하기 쉬운데 나나미랑 있으면 그게 잘 안됐다. 그래도 몸에 밴 습관이라고 어느새 정신을 차리니 나나미의 방 앞에 서 있었다. 자판기에서 뽑아온 음료를 두 손에 들고 노크를 할지 말지 한참을 고민했다. 방앞을 떠나지도 들어가지도 못하고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알루미늄 캔 표면에 송골송골 맺힌 물방울이 손바닥을 적시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짙게 얼룩진 바닥으로 시선을 떨구자 덜컹거리며 문소리가 났다. 시선을 도로 올리니 미간을 찌푸린 나나미가 서 있었다.

 

   “안 들어오고 거기서 대체 뭘 하는 겁니까?”

   “아, 알고 있었어?”

   “네.”

 

나나미가 문가를 비스듬히 빗겨 섰다. 들어오라는 뜻이었다. 겨우 두 걸음을 나서니 나나미의 방이었다. 이 정도의 거리를 고민하고 있었다니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문을 닫는 나나미에게 캔커피를 쥐여주고 언제나처럼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푹신한 섬유유연제 향이 났다. 선선한 에어컨 바람이 습한 공기를 머금은 나를 식혀줬다. 바보 같은 표정을 짓고 에어컨 바람을 쐬고 있자 벽에 가만히 기대있던 나나미가 입을 열었다.

 

   “왜 노크도 안 하고 밖에 서 있었습니까?”

   “어? 그냥……. 좀 그런가 해서.”

   “대체 뭐가 말입니까?”

   “하이바라도 없는데…. 나랑 얘기하는 거 재미없을 거 같아서.”

 

   손에 담긴 이온 음료 캔을 갉작였다. 내 말을 들은 나나미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은 채 내 손의 캔을 가져가 제 손으로 딴 뒤 도로 내 손에 쥐여주었다. 목으로 넘어가는 이온 음료는 찬 기운이 식어 밍밍하고 맛이 없었다. 입안이 텁텁하고 껄끄러웠다.

 

   “재미없지 않습니다.”

   “응?”

   “당신과 이야기 하는 거. 재미없지 않다고요.”

 

   멀찍이 떨어져 있던 나나미가 불쑥 가까이 다가왔다. 하이바라와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나나미의 키가 생각보다 컸다. 나와 시선을 맞추기 위해 허리를 숙인 모습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나나미와 대화할 때는 전부 시선이 맞았던 거 같은 기분이다.

 

   딴생각하는 사이 다시 멀어진 나나미는 평소처럼 읽던 책을 꺼내와 늘 앉던 곳에 자리를 잡았다. 여전히 침대에 앉은 채로 급격히 낮아진 나나미의 머리 끝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제야 나나미가 했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나랑 얘기하는 게 재미없지 않대. 나나미가 일러준 사실 하나가 기뻤다. 뒤늦게 몰려오는 감정에 뺨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웃음을 배실배실 지으며 침대에 주욱 늘어져 누웠다. 턱을 괴고 나나미가 읽는 책의 페이지를 눈으로 훑었다.

 

   “저번에 읽던 거랑 다른 거야?”

   “저번이요?”

   “그, 왜. 샌드위치 만들어줬을 때.”

   “그건 벌써 다 읽었습니다.”

   “빠르네… 나는 책은 잘 못 읽겠어. 집중력이 부족한가 봐.”

 

   옆에서 본 나나미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말려 올라가 있었다. 옅게 미소를 지은 표정이 나를 비웃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좀 더 애정이 담긴, 왠지 보면 안 될 것 같은 얼굴을 훔쳐본 기분이었다. 괜히 부끄러워진 나는 비웃는 거냐며 괜히 성을 냈다. 나나미는 언제 웃었냐는 것처럼 표정을 지우고 성을 내는 내게 늘 그런 담담하고 조금은 단호한 투로 대꾸를 했다. 나는 간헐적으로 입을 열며 떠들었고 나나미는 책을 읽으면서도 내게 꼬박꼬박 대답했다. 그게 좋았다. 나나미의 공간에 나라는 존재가 불순물이 아니라 오롯한 하나의 무언가라는 인식을 줬다. 편안한 공기와 나른한 분위기에 눈이 감겼다. 나나미의 방에만 오면 잠이 쏟아졌다. 푸근한 이불에 무거워진 얼굴을 묻었다. 곧장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듯 시야가 캄캄해졌다.

 

 

   나나미 켄토는 불현듯 그녀의 말 수가 줄어들었다고 생각하며 책장을 한 장 넘겼다. 팔락이며 넘어간 종이에선 새 책 특유의 풀냄새가 솔솔 풍겼다. 사각거리는 종이 끝머리를 굳은살이 배긴 손끝으로 매만졌다. 그녀가 너무 조용했다. 아침을 알리는 새처럼 조잘거리는 목소리가 사라지자 방안이 텅 빈 기분이었다. 그는 말라붙은 입안을 혀로 굴렸다. 볼 안쪽을 혀끝으로 지그시 누르다 이내 몸을 침대 쪽으로 돌렸다. 가지런히 정리되어있던 이불이 이리저리 흐트러져 있었다. 새하얀 시트 위엔 어느샌가 잠든 그녀가 규칙적인 숨소리를 뱉었다. 나나미 켄토는 순간 김이 빠졌다. 몸 안에 잠긴 숨을 한꺼번에 토해냈다.

 

 

   잠든 여자의 얼굴은 흘러내린 머리카락으로 엉망이었다. 나나미 켄토는 그런 여자애의 얼굴을 가만 쳐다보다 문득 저 머리칼이 거슬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잠에서 깨지 않게 조심스러운 손길로 머리카락을 떼어냈다. 말끔하게 드러난 여자의 얼굴을 또 한참 동안 쳐다봤다. 평범한 동양인 여자애. 일본인과 비슷한 생김새를 했으면서 타국에서 넘어온 이국의 존재. 머리색과 눈 색이 다른 자신보다도 그녀가 훨씬 먼 존재같이 느껴졌다. 이 땅 위에 친인척 하나 없다고 했다. 그녀가 흘리듯 했던 말이었다. 씩씩한 얼굴로 곧잘 적응했던 그녀지만 나나미 켄토는 그녀가 얼마나 눈물이 많은지, 정이 얼마나 많고 따뜻한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 자신과 하이바라를 대하는 태도에서 티가 났고 종종 눈물을 훔치며 통화하던 모습을 보았으니까. 나나미 켄토는 그녀가 학교의 구석진 곳에서 남모르게 눈물을 훔치던 장면이 좀처럼 잊히지 않았다. 눈동자 뒤로 잔상처럼 달라붙은 것 같았다. 그녀는 작은 어깨 위로 보이지 않는 것들을 짊어지고 있었다. 그녀의 무게로 가라앉은 침대가 괜스레 푹 꺼진 기분이었다.

 

   나나미 켄토는 여러 감정이 뒤섞이는 마음을 뒤로한 채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녀를 깨우지 않고 내버려 둘 심산이었다. 그녀가 잠에서 깬다면 배고프다 할 테니 뭘 좀 해 먹어야겠다. 나나미의 입가에 웃음이 맴돌았다. 그는 그녀의 숨소리를 배경음 삼아 미처 다 읽지 못한 책을 한 장 다시 넘겼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

 

   누군가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사방이 흔들리고 정신이 없었다. 깊은 물 속에서 억지로 끄집어내는 감각에 인상이 절로 찌푸려 들었다. 나를 붙든 팔을 엉겨 붙들고 칭얼거리는 소리를 냈다. 일어나기엔 아직도 잠이 왔다. 흔들리는 움직임이 멈췄다.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떨어지지 않는 눈을 겨우 뜨자 온 주위에 오렌지빛이 가득했다.

 

   “응…?”

   “대체 언제까지 잘 셈입니까.”

   “나나미…?”

   “네.”

 

   흐릿했던 정신이 또렷해질수록 지금 내가 있는 공간이 나의 방이 아니라는 사실이 조금씩 떠올랐다. 분명 방에 놀러 왔을 땐 하늘이 푸른색이었는데, 벌써 새빨간 빛으로 하늘이 물들고 있었다. 해가 긴 여름일 텐데 시간이 여간 지난 거 같지 않았다.

 

 

   “하이바라는?”

   “아직입니다.”

    아직도?”

   “네.”

 

   늦네… 잠긴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침대 위에서 늑장을 부리며 몸을 일으켰다. 덩그러니 앉아 나나미에게 시선을 옮겼다. 제자리에 선 나나미도 물끄러미 나를 쳐다봤다.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다. 무거운 침묵을 깬 건 나도 나나미도 아니었다. 내 뱃속에서 난 뱃고동이었다. 놀란 나는 눈을 끔벅이고 나나미도 눈을 조금 크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

   “…배고픕니까?”

“그런 거… 같은데.”

    

   여느 때와 비슷하게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어색한 티를 감추기 위해 부산스럽게 망가진 머리를 애써 정리했다. 나나미는 잠시 방문 쪽을 바라봤다. 물에 젖은 것처럼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다듬고 나나미의 동그란 뒤통수를 쳐다봤다. 이제 그만 헤어질 시간이었다.

 

   “그럼 난 이만 돌아갈 ㄱ,”

   “뭐 먹고 싶은 거 있습니까?”

 

   거의 동시에 흘러나온 목소리였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나미를 쳐다봤다. 몸을 돌린 나나미는 아까처럼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잘못된 말은 하지도 않은 것처럼 올곧은 모양새였다. 나는 조금 눈치를 보다가 마른 입술을 혀로 축였다. 나나미는 재촉하지 않고 나의 대답을 기다렸다.

 

   날이 더우면 시원한 음식이 생각난다. 먹기 어렵지 않고 쉽게 넘어가고 산뜻한 그런 음식. 한국에 있을 때는 냉면을 자주 먹었다. 엄마와 마주 앉아 비빔냉면과 물냉면을 한 젓가락씩 나눠 먹는 게 참 즐거웠다. 그렇지만 여기는 일본이니까. 일본에도 냉면 같은 요리가 있던가? 시원한 면 요리가 뭐가 있을까? 바로 생각나는 건 달콤한 쯔유에 담가 먹는 소바밖에 없었다. 어렵지 않고, 간단하고. 입안에 침이 고였다.

 

   “소바…?”

   “…….”

   “아니면 그냥 시원하고…. 면 요리가 먹고 싶어.”

   “알겠습니다.”

 

   짧게 대답을 마치고 휙 하니 방을 나가버리는 나나미의 등을 뒤쫓아 걸었다. 공용주방에 재료가 있을까? 아마 없을 거 같은데…. 공용주방에 놓여있던 냉장고 안을 생각하며 걷다가 갑자기 멈춰선 나나미의 등에 코를 쿵 부딪쳤다. 움찔, 나나미의 어깨가 튀어 올랐다.

 

 

   “당신이라는 사람은!”

   “왜, 왜 화내?! 부딪힌 건 난데?!”

   “왜 뒤쪽에서 쫓아오는 겁니까?”

   “아니 왜? 쫓아가는 것도 안 돼?”

   “아니, 제 말은…!”

 

   갑자기 불같이 화내는 그의 모습에 질세라 소리를 질렀다. 억울해! 뭐야! 얼얼한 코를 부여잡고 나나미를 노려봤다. 나나미는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한숨을 쉬더니 코를 덮은 내 손을 밀어냈다. 발갛게 변한 코끝을 본 나나미가 미간을 찌푸렸다. 세게 안 부딪혔는데… 인상을 찡그린 나나미의 표정에 주눅이 들어 중얼거리자 나나미가 혀를 찼다. 그리고 가벼운 힘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나나미?”

   “뒤에서 말고 옆에서 쫓아오세요.”

   “화난 거 아냐?”

   “제가 왜 화를 냅니까.”

 

   화냈으면서…….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은 목소리는 목구멍 뒤로 꿀꺽 삼켰다. 다시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나나미를 따라 걸었다. 내가 따라오기 쉽게 보폭을 맞춰주는 거 같았다. 말투는 가끔 날카로운데 이런 모습을 보면 나나미도 결국 다정한 사람 같다. 알고 있지만. 복도를 지나는 내내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었다. 하이바라가 언제쯤 돌아올까 하는 이야기와 내일 들을 수업 혹은 임무에 관한 내용이었다. 나나미의 걸음은 공용주방을 향하지 않았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냥 나나미를 따라 걸었다. 어디를 가는지 알 수 있었다.

 

   한여름 날씨는 해가 저물어도 후덥지근했다. 공기가 무거워 숨을 한번 들이마실 때마다 묵직한 물방울을 삼키는 기분이었다. 더위를 잘 타는 체질이 이럴 때는 참 불편했다. 자꾸만 벌어지는 거리가 미안했다. 나나미는 내가 걸음을 멈추어 설 적마다 따라 걸음을 멈췄고 나를 기다렸다.

 

   “나나미이… 넌 안 더워?”

   “괜찮습니다.”

   “일본은 너무 더워…… 아니, 너무 습해….”

 

   턱밑으로 흐른 땀을 손등으로 닦으며 중얼거렸다. 오히려 따라 나온 게 방해가 된 거 같았다. 무더운 여름 속 나나미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것처럼 멀끔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마트로 내려가는 길목 내내 빼곡히 들어찬 울창한 나무 속에선 자신을 짝을 찾으며 우는 매미가 있었다. 나와 나나미 대화 사이를 매미 소리가 가득 채웠다. 나는 나나미를 향해 손을 뻗고 휘적였다. 잡아달라는 무언의 행동이었다. 나나미는 흐느적이는 손을 못마땅한 얼굴로 쳐다보며 못이기는 척 손을 잡아줬다. 우리는 그렇게 손을 맞잡고 더는 멀어지지 않는 걸음으로 마트를 향해 걸었다.

 

 

*

 

   마트까지 가는 길은 한참이었는데,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은 금방이었다. 차가운 바람이 가득한 공간에 몸을 담갔다고 조금 괜찮아진 모양이었다. 우리는 곧장 공용주방으로 향했다. 조리대 위로 사 온 재료를 꺼내놓는 나나미의 모습을 보다 재료가 쏟아진 조리대를 쳐다봤다. 소바를 만들기엔 재료의 가짓수가 많아 보였다.

 

   “소바 만드는 거 아니야?”

   “네.”

   “그럼?”

   “히야시츄카요.”

   “히야시… 뭐?”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내게 나나미는 다시 한번 친절히 메뉴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히야시츄카. 일본에 여름이 오면 꼭 라멘집에 추가되는 차가운 면 요리라고 했다. 새콤달콤하고 아삭아삭하게 씹히는 야채들이 시원하게 해줄 거라 설명했다. 먹어보지 못한 음식이니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나나미가 만드는 음식은 맛있으니까, 얌전히 기다리면 될 것 같았다. 나나미는 삼 인분을 준비했다. 하이바라가 곧 도착할 거라 연락을 했기 때문이다. 나나미는 불 앞에서 면을 삶고 나머지 밑 재료를 준비했다. 혼자 삼 인분을 만들어내는 손길은 일사불란했다. 무언가 도울 게 없나 기웃거렸으나 불안하니 저리 가라는 축객령이 내려질 뿐이었다.

 

   한국의 집에도 있었을 때도 생각한 거지만 타인이 요리하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건 안정감이 든다. 들려오는 끓는 소리와 지글거리는 소리, 식기구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스럽지 않고 규칙적이기 때문일까. 어린아이들이 심장 박동 소리를 들으면 잠에 쉬이 드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정갈한 뒷모습에서 음식을 먹을 사람들을 생각하는 보이지 않는 애정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나나미는 왜 한 번도 싫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던 걸까? 매일같이 부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귀찮고 싫었을 텐데. 쓸데없는 감상에 잠겨있는 내 앞으로 가지런히 고명이 장식된 접시가 올라왔다. 세 개의 접시가 모두 식탁 위에 올라오고 귀신같은 타이밍에 하이바라가 공용주방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다녀왔어!”

   “하이바라!”

   “어서 와.”

 

   빠르게 손을 씻고 자리에 앉은 하이바라는 이 메뉴를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했던 나와 다르게 보자마자 한눈에 알아챘다.

 

   “히야시 츄카?”

   “하이바라는 알고 있었어?”

   “그럼!”

   “근데 나나미, 웬일이야? 너…”

   “붙기 전에 얼른 먹죠.”

 

   멀뚱멀뚱 뜬 눈으로 하이바라와 나나미를 번갈아 바라봤다. 하이바라도 둥근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 나나미를 쳐다봤다. 나나미는 우리의 눈빛에도 묵묵히 젓가락질했다. 하이바라는 상쾌한 웃음을 터트리며 식전 인사를 외쳤다. 방금 나나미가 하이바라 말을 끊은 게 아닌가? 쉽게 젓가락을 못들고 있으니 나나미의 지적이 떨어졌다. 어영부영 대꾸하고 젓가락을 손에 쥐었다. 색색의 고명이 올라간 요리는 눈이 즐거웠다. 위에 올라간 고명을 조금씩 나눠 면과 함께 입에 넣자 새콤달콤한 맛이 입안에 가득했다. 신선한 토마토와 오이가 아삭아삭하고 상큼해 나나미의 말대로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맛있는 것을 먹자 느슨해진 입매가 스멀스멀 웃음을 지었다.

 

   “나나미 이거 진짜 맛있다!”

 

   상기된 목소리를 들은 나나미는 담백한 반응이었다. 입꼬리가 슬쩍 올라간 것은 모르는 척했다. 그 얼굴이 마치 좀 전의 나나미 방에서 그를 몰래 훔쳐봤을 때의 표정이었다. 시원한 음식을 먹는데도 뺨이 홧홧했다.

*

 

 

   오늘은 나나미가 자리를 비웠다. 요즈음 단독임무가 부쩍 늘어났다. 주술사가 하는 일은 위험해서 긴급한 상황이 일어났을 때 비상전력이 될 수 있도록 두 명 이상이 꼭 붙는 거 같았는데, 급수가 높은 주술사에 한해서는 아닌가 보다. 그래도 위험하지 않나.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상처하나 없이 말끔히 돌아온 하이바라가 옆에 있으니 나나미라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사람 마음이 어쩔 수 있나.

 

   에어컨이 틀어진 공용 휴게실에 반쯤 누워 시간을 보냈다. 휴게실 탁자 위로 벌써 몇 캔이나 비운 이온 음료 여러 개가 나동그랐다. 창문 밖은 여전히 따가운 햇볕이 쏟아졌다. 가을에 가까워지면서 하늘은 점점 높아지고 파래지는데 식지 않는 햇빛은 여전했다. 나는 옆에 같이 늘어져 있는 하이바라를 쿡쿡 찔렀다.

 

“하이바라~ 재밌는 일 없어? 말 좀 해봐.”

“재밌는 일? 그런 거 없는데…”

 

   몸을 벌떡 일으켜 하이바라의 어깨에 머리를 문댔다. 있는 힘껏 비비며 뭉개자 하이바라가 시원한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들썩이는 어깨에 머리를 얻어맞으면서도 머리를 떼지 않았다. 하이바라는 내 심술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산발이 된 머리를 떼어내니 하이바라가 손을 뻗어왔다. 얌전히 정리해주는 손길을 받으며 창밖을 쳐다봤다.

 

   “나나미 늦게 올까?”

   “걱정돼?”

   “응, 너 늦을 때도 그랬어.”

   “하하.”

 

   기껏 자신의 손으로 정리한 머리를 도로 헝클어트리는 하이바라의 손길에 인상을 찡그렸다. 하이바라는 종종 내가 자기의 여동생이라도 된 것처럼 굴 때가 있다. 잔뜩 얼굴을 구기니 하이바라가 도로 머리칼을 하나하나 정리했다.

 

   “아.”

   “왜 그래?”

   “나나미가 아침에 공용 냉장고에 먹을 거 있으니까 먹으라 그랬어.”

   “어?”

 

   우리가 조르지도 않았는데 만들어 놓고 나가기라도 했대? 놀라움으로 한 톤 높아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하이바라는 내 손을 잡아 일으키며 얘기했다.

 

   “아마 우리 둘만 있으면 굶을까 봐 그런 거 아냐?”

   “어어…… 그 정도는 아닌데, 우리가 나나미를 너무 부려먹었나 봐.”

   “그건 너무 걱정 안 해도 될걸.”

 

   하이바라가 가볍게 대꾸했다. 그의 말뜻을 알지 못하겠어서 되물었더니 유순한 낯으로 모르는 척을 했다. 공용주방에 도착해 냉장고 문을 여니 예 접시 위로 랩이 덮여있는 샌드위치가 있었다. 두 접시를 꺼내어 식탁 위로 나란히 놓고 누가 사두었는지 모를 주스를 따라 자리에 앉았다.

 

   샌드위치는 새우와 아보카도가 올려진 오픈 샌드위치였다. 바게트같이 생긴 둥근 빵에(나는 빵 종류의 이름을 잘 모른다.) 세로로 예쁘게 모양을 내 자른 초록빛 아보카도 위로 발그스름하고 통통한 새우가 조르륵 플레이팅 되어 있었다. 한입 가득 베어 물면 부드럽고 고소한 아보카도가 씹히고 탱글탱글한 새우살이 톡톡 씹혔다. 무슨 양념을 한 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맛있었다. 양 볼을 부지런히 우물거리며 중얼거렸다.

 

   “나나미는 샌드위치를 정말 좋아하나 봐. 샌드위치보다는… 빵?”

 

   나와 마찬가지로 양 볼을 가득히 채운 하이바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입에 반이나 줄어든 샌드위치를 손에 든 하이바라는 서두르지 않고 입안의 내용물을 꼭꼭 씹어 삼켰다. 그러곤 잠시 생각하는 낯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내가 막 두 입째를 베어 문 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나미가 면 요리 안 좋아하는 거 알아?”

   “우믐?”

   “다 먹고 얘기해.”

 

   하이바라는 짐짓 엄한 표정을 지으며 주스가 담긴 컵을 밀어주었다. 또 오빠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하이바라와 다르게 다급한 마음으로 재빠르게 입안의 음식을 비웠다. 밀어준 주스도 벌컥벌컥 마신 채 그에게 되물었다.

 

   “안, 안 좋아한다고?”

   “응! 정확히 말하면 그냥 면보다는… 평평한 면? 왜 납작하게 생긴 것들 있잖아.”

   “어… 어어…”

   “그래서 신기했어. 저번에 저녁으로 히야시츄카 만들었잖아?”

 

   내 말에 순순히 대답하는 하이바라의 목소리는 명랑했다. 그에 비해 나는 급속도로 미안한 마음이 뱃속에 득실득실 들어찼다. 나나미가 싫다고 했으면 다른 거 먹자고 했을 텐데…… 기죽은 목소리가 빈 식당을 자그맣게 울렸다. 풀이 죽은 나를 바라보던 하이바라는 입꼬리를 끌어당기며 부드럽게 웃었다.

 

   “걱정하지 마.”

   “응?”

   “나나미는 억지로 만든게 아닐테니까.”

 

   하이바라는 또 뜻을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자꾸 의뭉스럽게 구는 그의 행동에 알아듣게 설명하라 조금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괜히 초조한 마음이 들어서였다. 하이바라는 어깨를 으쓱이곤 내 앞의 접시를 톡 건드렸다. 남기지 말고 다 먹으라는 소리였다. 저 얼굴을 보아하니 알려줄 눈치는 아닌 거 같다. 나는 다시 샌드위치를 베어 물며 생각했다. 하이바라는 친절하고 다정하지만, 가끔 속을 모를 때가 있다. 그게 나쁜 의미거나 불쾌하지는 않았지만 눈치 없는 내 입장에서 생각하면 답답한 일이었다. 하이바라는 보이는 것보다 눈치가 빠르니까. 일부러 저러는 거 같은데 저럴 때를 보면 강아지 같은 낯이 전혀 다르게 보인다. 왠지 분한 마음이 들었다. 목이 막히는 기분을 꼭꼭 씹어 삼킨 샌드위치로 밀어냈다. 맛있지만 어딘가 찝찝한 식사였다. 까슬한 빵에 입 주위가 베였는지 따끔따끔했다.

 

 

*

 

 

   그날 나나미는 아주 늦은 시간에 돌아왔다. 사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돌아온 지도 모르고 있었다. 이상하게 그날 밤 유독 잠을 설쳤다. 밤공기를 맡으면 좀 나아질까 싶어 밖을 나섰다 나나미와 마주쳤다. 나나미의 등 뒤로 환한 보름달이 높게 떠 있었다.

 

   “아직 안 자고 계셨습니까?”

   “나나미는 이제 돌아온 거야?”

   “아뇨, 온 지는 조금 됐습니다.”

   “그렇구나… 다친 데는 없어?”

   “괜찮습니다.”

 

   형식적인 대화가 오갔다. 나는 부러 느릿한 걸음으로 나나미의 곁에 섰다. 흘끔흘끔 나나미의 몸 상태를 살펴봤다. 다 티 나는 행동이었지만 괜찮았다. 거짓말은 아니었는지 멀끔한 나나미의 모습에 마음이 놓였다. 달이 바뀌었다고 조금 서늘해진 밤공기가 분위기를 느슨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나란히 벤치에 앉아 잡담을 나눴다. 오늘의 보조 감독은 누구였는지, 주령은 어땠는지, 하이바라와 선배들이 어땠는지 아주 사소한 내용이 가득했다. 나는 저녁에 먹은 새우 아보카도 샌드위치 이야기를 했다. 아보카도가 얼마나 고소했고 새우살이 얼마나 톡톡 튀었는지 하이바라는 그 큰 샌드위치를 한입에 반이나 해치웠다는 이야기를 크게 부풀려 얘기했다. 얼마나 열심히 떠들었는지, 쓰라렸던 입꼬리가 다시금 따끔따끔했다. 줄줄 이어지던 말이 멈추자 나나미가 돌아봤다.

 

   “왜 그럽니까?”

   “입꼬리가 아파…”

   “입꼬리가요?”

   “응….”

 

   나나미는 의아한 낯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멋쩍은 기분이 되어 왜그런지 설명했다. 아마 빵에 베인 거 같다고. 근데 거울로는 보이지 않아서 그냥 건조해서 그럴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어색한 웃음을 띄우며 이야기를 이어가려는 참이었다. 큼지막한 손이 얼굴을 감쌌다. 눈을 한번 깜박이니 나나미의 얼굴이 부쩍 가까워져 있었다. 나나미는 무던한 낯으로 엄지손가락 끄트머리를 세워 내 입꼬리 주변을 살살 쓸어내렸다.

 

   “나나, 미…?”

   “쉿.”

 

   굳은살이 박힌 손은 아프지 않게 상처 주변을 매만졌다. 손길이 너무 조심스러워 내가 유리 도자기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시선을 어디로 둘지 몰라서 이리저리 굴려댔다. 가까워진 나나미에게선 나나미의 침대에서 풍기던 포근한 향이 났다. 귓바퀴를 따라 열이 오르는 게 느껴졌다. 혹시 다른 사람이 주변에서 보기라도 한다면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떻게 보일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심장마저 쿵쾅거리며 뛰었다. 나나미에게 들킬 거 같아 무서웠다. 이상하게 하이바라가 해댔던 의미심장한 말들이 떠올랐다. 혹시 하기 싫은데 그를 부려먹는 것이 아닌가, 그가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음식을 만들어 주었던 건 무언가. 생각이 엉켜버린 실타래처럼 구깃구깃했다.

    

   “조금 빨간 거 같습니다. 약 바르세요.”

   “어, 으응. 응...”

 

   나나미는 조프렸던 미간을 피고 내 얼굴을 짚었던 손을 떼고 멀어졌다. 분명 여름인데, 아직 밤은 후덥지근한데. 나나미의 손이 닿았다 떨어진 곳은 온기 하나 사라진 것처럼 서늘했다. 나나미는 시간이 늦었으니 이제 방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왠지 쓸쓸했다. 방으로 데려다주겠다며 먼저 몸을 일으키는 나나미의 뒷모습을 따라 느리게 걸었다. 요전의 장보기가 생각나는 길이었다. 교정에서 기숙사까지의 거리는 학교에서 마트까지의 거리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짧았다. 눈 한번 깜박이니 방문이었다. 나는 들어가기를 머뭇거렸다. 나나미는 들어가지 않는 나를 기다렸다. 그가 그렇게 서 있을 걸 알면서도 그랬다.

 

   비겁한 방식으로 나나미를 곁에 붙들어두었다. 나나미라면 지금 내 머릿속의 실타래를 풀어줄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러나 좀처럼 말 한마디가 나오지 않아 우스운 꼴이 되었다. 찌르륵, 찌르륵. 늦은 새벽인데도 풀벌레가 울었다. 가을이 정말 다가오는 거 같다. 나나미는 보다 못해 먼저 입을 뗐다. 가보겠습니다. 푹 쉬세요. 내일 봅시다. 단정한 얼굴로 단정한 말을 뱉고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넓은 보폭으로 사라지는 나나미의 등을 멀거니 바라봤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나의 여름이 끝이 났다.

 

.

.

.

.

.

.

 

 

   고소한 버터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포근한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흘러들어오는 갖가지 냄새를 향해 후각을 예민하게 곤두세웠다. 볶아지는 마늘 향, 기름에 재료가 지글거리는 소리, 알싸하고 달콤한 향신료 냄새. 나는 나른한 몸을 뒤척이며 침대에서 눈을 떴다. 깔끔하고 단정한 방은 익숙해질 대로 익숙한 방이었다. 열린 방 틈 사이로 분주한 부엌의 소음이 알알이 들어왔다. 언제 잠든 거지. 잠기운이 다 가시지 않아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붙들어 맸다. 나는 나른한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잔뜩 흐트러져 산발인 머리를 하고 비척비척 걸었다. 부엌엔 키 큰 남자가 서 있었다. 간이 조리대가 낮아 살짝 굽었던 등이 아니었다. 꼭 맞는 자신의 자리처럼 우뚝한 모양새였다. 나는 그를 놀래줄 심산으로 뒤에서 덥석 끌어안았다. 내가 오는 것을 알았는지 놀라는 기색도, 흔들리는 기색도 없이 나의 체중을 든든히 받은 남자가 희미한 소리로 웃었다.

 

   “일어났습니까.”

   “으응, 미안. 잠들어서.”

   “제가 늦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등 가까이 뺨과 귀를 붙이면 규칙적인 심장 박동 소리가 들린다. 이불과 침대에서 풍기던 섬유유연제 향이 희미하게 났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향수 향이 섞여났다. 어찌 되었든 나는 그의 향이 좋았다. 코를 박고 과장되게 숨을 들이켰다. 스읍. 그가 다시 바람 새는 소리로 웃었다. 내가 장난을 치는 사이 모든 요리를 불 위에 올려놓은 그가 몸을 돌렸다. 엉망인 내 얼굴을 마주하고 얼굴을 살짝 찡그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크고 두텁고 따뜻한 손으로 산발인 내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정리한다. 나는 그 손길에 기대 어리광을 부렸다.

 

   주술계를 떠났던 나나미가 돌아왔다. 한껏 지친 얼굴의 낯을 한 나나미는 어느 쪽도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고 그랬다. 그렇다면 차라리 적성에 맞는 일을 하겠다고. 그의 상냥함이 결국 잔인한 세계로 발걸음을 돌리는 계기가 되었다. 씁쓸한 마음과 동시에 그와 다시 볼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주술사를 그만뒀을 무렵 연락을 끊을 생각은 아니었지만, 섣불리 그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그때의 나나미는 너무 지쳐 보였고. 나의 존재가 하이바라를 떠올리게 할 거 같았으니까. 그러나 그는 주술계로 돌아오자마자 나를 찾았다. 참, 바보 같은 남자다.

 

   “잘 잤습니까.”

   “꿈꿨어.”

   “꿈이요?”

   “그냥… 우리 학교 다닐 때.”

 

   나나미는 익숙한 손길로 나를 식탁 앞에 앉혔다. 얌전히 손을 내리고 기다리면 식탁 위론 그가 준비한 요리가 하나둘 올라왔다. 연어와 아보카도가 올라간 샐러드, 감바스 알 아히요와 곁들여 먹을 잘 구워진 바게트 조금. 페투치니 면으로 볶은 오일 파스타. 나는 포크로 통통한 새우 하나를 콕 찍어 바게트 위에 올렸다. 한입 크게 베어 물면 바삭바삭한 바게트와 톡톡 터지는 새우살이 마늘 향이 배어든 오일과 잘 어울렸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얼굴이 풀어진다. 비실비실 새어 나오는 웃음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고치지 못하는 내 버릇이었다. 느물거리는 내 얼굴을 본 나나미도 만족스러운 미소를 얼굴에 걸쳤다. 오랜만에 그와 마주한 식사는 즐겁고 아주 맛있었다.

 

*

 

   우리는 식사가 끝나면 나란히 싱크대 앞에서 설거지를 했다. 세제 칠을 하고 물로 헹구고 닦아내는 과정은 귀찮지만 나나미와 함께하면 제법 즐거운 과정이 되었다. 파스타가 담겼던 오목한 그릇을 마른행주로 닦다 문득 오늘 먹었던 파스타 면의 모양을 생각했다. 꿈에서 보았던 하이바라의 말도 생각이 났다. 그날 밤에 묻지 못한 말이 이상하게 이제서야 잘 흘러나왔다.

 

   “저기, 나나미.”

   “네.”

   “면 요리 싫어하지 않아?”

 

   나나미는 말이 없었다. 자신의 손에 들린 접시를 묵묵히 닦아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있지, 내가 학교 다닐 때 꿈꿨다고 했잖아. 하이바라가 나왔어. 나나미가 단독 임무 갔을 때 샌드위치 만들어 놓고 갔었잖아.”

    

   “그때 하이바라가 얘기해줬어. 나나미는 면 안 좋아한다고. 특히 납작하게 생긴 면.”

   “…”

   “근데 히야시츄카 일도 그렇고 오늘 파스타도 그렇고… 왜 그런 거야?”

   “……”

   “그래서 내가 걱정 했었거든, 네가 싫은데 내가 억지 부리는 거 아닌가. 먹을 거 만들어달라는 이유 하나로 너를 귀찮게 한 게 아닌가.”

   “그건,”

   “근데 하이바라가 그건 아니랬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랬어.”

 

   달그락, 마지막 접시가 건조대 위로 올라갔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 물끄러미 나나미를 바라봤다. 나나미는 평소와 같은 얼굴로 똑같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슬그머니 그의 품으로 들어가 안겼다.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허리를 단단히 끌어안았다. 그리고 말을 계속 이었다.

 

   “나나미 그거 기억나? 그날 우리 새벽에 만났던 거.”

   “…네.”

   “내가 그날 물어보고 싶었던 게 이거였어. 그날 방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던 게 그거였어.”

   “…그렇습니까.”

   “응.”

 

   그때는 하이바라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으니까.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나나미는 내 이마에 입술을 붙였다 뗐다. 그의 품에서 얼굴을 떼어내고 쳐다봤다.

 

   “하이바라의 말은 사실입니다.”

   “…”

   “제가 면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당신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걸 귀찮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도 전부 다요.”

   “…왜?”

   “이미 알고 있지 않나요.”

 

   나는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그를 재촉했다. 그의 손길이 뒷머리와 귓가를 지나 뺨을 감쌌다. 나는 얼굴을 기대고 그의 손등을 내 손으로 겹쳐 잡았다. 뭉툭하고 단단한 엄지가 아랫입술을 꾹 눌렀다 뗐다.

 

   “당신이 먹는 모습을 보는 게 즐거웠습니다. 내가 만든 음식을 당신이 먹고 소화 시켜 당신의 일부가 된다는 점을 생각하니 좋았고요.”

 

   귓가가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내가 그를 좋아하고, 그가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재회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 깨달았다. 더는 어린애가 아니었던 우리는 서로 자연스럽게 가까워졌고 예전보다 더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 그가 나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먹는 게 단순히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애정의 한 방식인 줄만 알았는데,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상상치 못했다.

 

   “당신이… 커가는 데 내가 만든 음식이 기여를 했다면 당신의 일부는 제가 만든 거랑 다름없으니까요.”

   “……음흉해.”

 

   나는 조금 질린 표정을 했다. 그에 반해 그는 조금 즐거운 표정을 했다. 어쩌면 이게 다 장난일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란 걸 알면서도 괜히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품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조금 힘을 실어 그의 가슴팍을 밀어냈다. 보통은 모르는 척 밀려주는데 오늘은 단단히 버티고 서있는 것도 모자라 허리를 감은 손에 힘주어 끌어당겼다. 멀어진 거리보다 더 가깝게 몸이 밀착됐다. 서로의 심장 소리가 다 들릴 것 같았다. 그는 외면하는 나를 달래고 달래 겨우 얼굴을 마주했다. 짙은 녹색의 눈으로 얼굴을 샅샅이 살피고 손끝으론 입꼬리 주변을 살살 쓸어내렸다.

 

   “오늘은 베이지 않았습니까?”

   “뭐가?”

   “입술 말입니다.”

   “아…”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옛날 일을 얘기하는 거 같았다. 희미하게 웃음을 띤 얼굴을 한 나나미가 고개를 천천히 숙였다. 얄팍하고 단단한 입술이 내 입술을 비스듬히 비껴가 입 맞췄다. 그와 연애라는 걸 하면서 상상도 못 했던 면을 찾아가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마치 지금처럼. 장난이라곤 하나도 모를 것 같은 남자가 곧잘 낯간지러운 장난은 쳐댔다. 나는 감질이 나 그를 재촉했다. 그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의 목을 감싸 안고 벗어나지 못하게 끌어당겼다. 서로의 입술이 맞닿고 숨결이 섞인다. 얼굴로 몰리는 열기가 여름을 떠올린다. 늦여름에서 초가을로 흘러가는 그 날, 후덥지근했지만 풀벌레가 울었던 그날 밤, 끝난 줄만 알았던 나의 여름은 끝나지 않고 내 곁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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